이 때에 한 순사라는 얼굴 검은 순사가 나타났다.
"허숭씨 있소"?
하고 허숭을 보면서 한 순사가 물었다.
"네."
하고 허숭이가 일어났다.
"한 순사 오셨어요"?
하고 작은갑이도 일어섰다.
"어서 옷 입고 나오시오."
하고 한 순사는 작은갑의 인사는 받지도 아니하고 숭에게 명령하였다.
"무슨 일이야요"?
하고 숭은 물었다.
"무슨 일인지 가보면 알지."
하고 한 순사의 말은 거칠었다.
숭은 대님만 치고 농모를 쓰고 안방을 들여다보며,
"주재소에서 오래서 나는 가오. 작은갑씨한테 물어서 하시오."
하고 마당에 내려섰다.
정선은 안았던 젖먹이를 내려놓고 마루에 따라 나와서
"무슨 일이야요"?
하고 한 순사를 보고 물었다.
"죄가 있으니까 잡아가지."
하고 한 순사는 정선이가 보는 앞에서 숭에게 포승을 걸었다.
숭이 포승을 지고 끌려가는 길가에는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바라보고 있었다. 숭은 선희가 한 마장쯤 앞서서 붙들려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주재소 거의 다 미쳐서 숭은 주재소 쪽으로부터 오는 정근을 만났다. 정근은 숭을 보고 유쾌한 듯이 웃고 잘 가라는 듯 손을 들었다. 숭은 이것이 다 정근의 조화인 것을 깨달았다. 정근은 동네에 온 뒤로 동네 젊은이를 데리고 술 먹는 것, 남의 집 아내와 딸 엿보는 것, 그리고는 주재소에 다니는 것, 이 세 가지를 일삼는다는 것은 숭이도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유치장을 가지지 못한 주재소의 사무실 안에는 선희, 한갑, 또 한갑을 때린 패 중에서 두 사람이 모두 포승을 진 채로 앉아 있었다. 숭도 그 새에 끼었다.
"무얼 내다보아"?
"왜 꿈지럭거려"?
"가만 있어!"
"안돼!"
하는 지키는 순사들의 책망하는 소리가 났다.
숭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렇게 있기를 한 반 시간쯤 한 뒤에 맨 먼저 소장실로 불려 들어간 것이 한갑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고개도 꼼짝 못하고 눈으로만 힐끗힐끗 좌우를 돌아보고 덜덜 떨고 있었다.
한 이십 분쯤 되어서 한갑이가 흥분한 낯으로 순사에게 끌려서 제자리에 돌아오고, 다음에는 한갑이를 때린 청년 둘이 한꺼번에 불려 들어갔다. 그리고 방에는 숭과 선희와 한갑만이 남았다. 한갑은 숭을 향하여 미안한 듯이 눈짓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도 이십 분쯤 지나서 나오고 다음에는 선희가 불렸다.
선희는 순사에게 끌려 소장실에 들어갔다. 선희는 여자라는 특별 대우로 포승은 치지 아니하였다. 소장실에는 테이블 하나와 교의 둘이 있었다.
수염 깎은 자리가 시퍼렇고 머리가 눈썹 바로 위에까지 내려덮인 소장은 선희를 보고 교의에 앉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는,
"고꾸고가 와까루까(일본말을 할 줄 아나)"?
하고 물었다.
"너는 기생이라지"?
하고도 물었다.
"너는 허숭의 정부라지"?
하고도 물었다.
선희는 "네", "아니오"하고 간단하게 대답하였다.
"왜 살여울을 왔느냐"?
하고 물었다.
"유치원 하려고 왔소."
하고 선희는 대답하였다.
"유치원은 왜 해!"
하고 소장은 또 물었다.
"내 정성껏 아이들을 가르쳐보려고 하오."
하고 선희는 대답하였다.
"조선 독립을 위해서 유치원을 하고, 야학을 하는 것이 아니야"?
하고 소장은 소리를 높였다.
선희는 대답을 아니하였다.
"그렇지? 허숭이가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너도 거기 공명해서 제 돈을 가지고 와서 유치원을 하고 야학을 하는 것이지"?
하고 소장은 한번 더 을렀다.
"조선 사람이 하도 못사니까 좀 잘 살게 해보려고 힘쓰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오? 유치원 하고 야학 하는 것이 무엇이 죄요"?
하고 선희는 날카로운 소리로 들이댔다.
"나마이끼나 고도 유우나(건방진 소리 말아)!"
하고 소장은 테이블을 쳤다.
선희의 대답이 소장의 심중을 해한 것이었다.
선희는 소장이 자기에게 대하여 조롱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심히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흥분된 어조로,
"대관절 무슨 죄로 나를 잡아왔소. 나는 어린아이들과, 글 모르는 부녀들을 가르친 죄밖에는 아무 것도없소."
하고 선희는 찢어지는 소리를 질렀다.
선희는 저 스스로도 놀라리만큼 큰소리를 내었다.
이것이 소장의 심정을 더욱 좋지 못하게 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년! 예가 어딘 줄 알구"?
하고 곁에 섰던 순사가 선희의 뺨을 한번 갈겼다.
"이년을 묶어라!"
하고, 소장은 분개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