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서 어린애가 무엇에 놀란 것처럼 으아으아하고 울었다.
"애기 우우."
하고 선희는 정선을 부르면서 어린애를 안고 둥개둥개를 하며 방 안을 돌아다녔다. 선희는 그윽히 어머니의 본능이 움직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자기는 어머니가 되어볼 날이 있을까 하고 망망한 전도를 생각하였다.
정선은 절뚝절뚝하는 양을 남에게 보이기가 싫어서 기는 모양으로 건넌방에서 나왔다.
"오, 왜"?
하고 정선은 어린애의 눈앞에 손바닥을 짝짝 두드렸다. 난 지 열 달이나 바라보는 어린애는 울음을 그치고 엄마를 향하여 두 손을 내밀었다.
"곧잘 엎디어서 놀더니 불현듯 엄마 생각이 나나 보아. 눈물이 글썽글썽하더니만 장난감을 동댕이를 치고 우는구려."
하고 선희는 어린애의 볼기짝을 한번 가볍게 때리며 웃는다.
"오, 젖 머, 젖 머."
하고 정선은 어린애에게 젖꼭지를 물리고 무릎을 흔들흔들하면서,
"이리 좀 앉어요."
하고 선희에게 앉을 자리를 가리키며,
"글쎄, 허 선생이 검불랑인가 세포인가를 가서 살자는구려. 에구, 이제 시골 구석은 지긋지긋한데 또 이만도 못한 시골을 가자니 어떡해? 선희가 허 선생한테 말 좀 해서 서울로 가도록 해 주어요. 도저히 벽창호니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
"검불랑"?
하고 선희는 약간 의외임을 느끼면서 되묻는다.
"응. 왜 그 검불랑이라고 안 있수? 저 삼방 가는 데 말야. 그 무인지경 안 있수. 거기를 가 살자는구려. 난 못가. 가고 싶거든 혼자 가라지, 난 죽어도 싫어!"
하고 정선은 분개한 어조로 말을 맺는다.
"아무 데고 허 선생이 가신다면 따라가야지 어쩌우? 허 선생이 옳지 아니한 일을 하신다면 반항도 할 만하지마는, 옳은 일을 하신다는 데는 어디까지든지 도와드려야지."
하고 선희는 한숨을 쉬고 눈을 감았다.
"남편이 아내를 불행하게 할 권리가 어디 있소?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라도 아내가 싫다면 말아야지. 왜 아내는 부물인가"?
하고 정선의 어조는 더욱 분개한 빛을 띤다.
선희는 더 말할 계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슬며시 일어나서 집으로 갔다.
쓸쓸한 집에는 아무도 선희를 맞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젊은 사람에게 이러한 쓸쓸함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선희는 마루끝에 걸터앉아서 달내강과 달냇벌을 바라보면서 울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이 동네의 어린애들과 숭의 사업에 일생을 의탁하리라던 생각도 이제는 다 수포에 돌아간 것 같았다.
"아아, 나는 어디로 가나"?
하고 선희는 고개를 폭 수그려 버렸다.
"작은갑군, 나는 살여울을 떠나게 되겠소."
하고 숭은 침통한 어조로 말하였다.
"떠나지 않고 배기려고 해보았지마는 암만 해도 안될 모양이오. 내가 떠난 뒤에는 조합이나 유치원이나 만사를 다 작은갑군이 맡아 하시오."
"가시다니, 선생이 가시면 되우"?
하고 작은갑은 정면으로 숭의 의사에 반대하였다.
"나도 떠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오. 나는 살여울에 뼈를 묻으려고 했지마는 그렇게 안되는구려."
"안될 건 무어요? 그까진 정근이 놈은 내쫓아버리지요. 그놈을 두었다가는 동네도 망하구 말걸. 한갑이두 그놈이 충동여서 그러지요. 내가 다 아는걸. 그런 놈은 단단히 곯려 주어야 해요."
하고 작은갑은 당장에 정근이를 때려 죽일 듯이 분개한다.
"정근이 하나만 같으면야 참기도 하지마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를 배척하는 모양이니까-."
하고 숭은 추연한 빛을 보인다.
"동네 늙은이들요"?
"젊은이들도 안 그렇소"?
"젊은이들 중에도 정근이 놈의 술잔이나 얻어먹고 못되게 구는 놈도 있지마는 그게 몇 놈 되나요. 적으나 철이 있는 사람이야 다 허 선생이 떠나신다면 동네가 안될 줄 알지요. 요새-그것도 정근이 놈의 수단이겠지-유 산장 영감이 생일날일세, 제사날일세 하고 동네 늙은이들을 청해서는 개를 잡아 먹이고, 술을 먹이고 그러지요.
못난 늙은이들이 거기 모두 솔깃해서 그러지마는 그것 몇 날 가나요? 어디 그 욕심장이 고림보 영감이 전에야 동네 사람 술 한잔 먹였나? 남의 동네 사람들을 청해 먹일지언정 없지, 없어요. 그러던 것이 요새 와서는 아주 인심을 사보려고. 흥, 그러면 되나요"?
하고 본시 말이 없던 작은갑은 갑자기 웅변이 되었다. 숭도 놀랐다. 평소에 그 밝게 관찰하는 것 같지도 않던 작은갑도 속에는 육조를 배포하였고나 하여, 그것이 더욱 작은갑에게 모든 일을 맡기는 것을 안심되게 하였다.
그러나 숭은 미리 뭉쳐 놓았던 회계 문부와 모든 서류를 작은갑에게 내어주며,
"살여울 동네에서 나를 다시 부르면 어느 때에나 오리다. 그렇지만 지금은 내가 떠나지 아니할 수가 없으니 모든 일은 다 형이 맡아 하시오. 그리구 이 집은 형이 쓰시오."
하고 숭은 "형"이란 말을 새로 썼다. 그것으로써 숭이가 작은갑을 존경함을 표시하려 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