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은 눈을 뜨려고 애쓰는 듯이 반쯤 눈을 떴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입술을 움직였다. 숭은 한갑의 등 뒤에 서서 순을 내려다보며 쏟아지려는 눈물을 억지로 빨아들였다. 마음 같아서는 임종에 한번 안아 주고라도 싶었다. 그러나 절대로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순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한 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순을 죽이는 것이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숭의 가슴을 찔렀다.

 

"그렇다, 내다. 그렇게 나를 따르는 순을 내가 아내를 삼았더면 이러한 비극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왜 나는 순을 버리고 정선과 혼인을 하였던가. 순에게 대한 사랑과 의리만 지켰더면 정선의 다리가 끊어지는 비극도 아니 일어났을 것이 아니었던가. 이 모든 비극은 다 나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에 숭은 모골이 송연함을 깨달았다.

 

의사는 최후로 강심제 하나를 주사하고 슬몃슬몃 가버리고 말았다. 밖에서 간호부를 시켜 "일금 오십원야(一金五拾圓也)"의 청구서를 숭에게 돌려보내고 가버렸다.

 

그 청구서를 받고 숭은 명상에서 깨어났다.

 

"여보, 여보!"

 

하고 한갑은 울며 아내를 흔들었다.

 

"아이구, 이를 어찌하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못 만난 손자 생각을 하고 울었다.

 

선희는 순의 입에다가 물을 떠 넣었다. 그러나 물도 그저 흘러 나오고 말았다.

 

강심제 주사의 힘인지 순은 눈을 떴다. 그러나 눈알이 돌지는 아니하였다. 한갑은 순의 눈에 저를 비치려고 순의 눈 앞에 제 눈을 가져다 대고,

 

"내요, 내야. 알어? 내야."

 

소리를 질렀다.

 

순은 얼굴 근육을 빙그레 웃는 모양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그것이 웃는 것인지 경련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한갑 어머니, 선희, 그리고 숭, 이 모양으로 차례차례 순의 눈 앞에 가까이 얼굴을 대었다. 순은 또 웃는 것 모양으로 얼굴의 근육을 움직이고 나서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목에 가래 끓는 소리가 그르렁그르렁하였다.

 

순의 감았던 눈이 다시 반쯤 떴다.

 

사람들은 순의 숨이 들어갈 때에는 또 나오기를 고대하였다. 그 동안이 퍽 오랜 것 같았다.

 

언젠지 모르게 순의 숨은 들어가고 다시 나오지 아니하였다.

 

순의 반쯤 뜬 눈은 멀리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보, 여보!"

 

하고 한갑은 미친 듯이 순을 흔들었다. 그러나 순의 무표정한 얼굴은 근육도 씰룩거리지 아니하였다.

 

사람들은 얼마 동안 말이 없었다.

 

한갑은 한없이 울었다.

 

숭은 한갑의 팔을 붙들며,

 

"여보게, 부인은 돌아가셨네. 자네가 부인을 오해한 죄를 부인의 얼굴을 가리기 전에 한번 말하게. 자네 부인은 한 점 티도 없는 이일세. 사람이 죽어서 혼이 있다고 하면 아직도 부인의 혼은 자네 곁에 있어서, 자네가 잘못 알았다, 용서한다는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을 것일세."

 

하였다.

 

"숭이, 면목 없네. 내 아버지가 사람을 죽였다더니 나도 사람을 죽였네. 내 아버지는 남이나 죽였지마는 나는 제 아내와 자식을 죽였네그려. 내가 무슨 면목으로 세상에 살아 있겠나. 내가 무슨 면목으로 아내의 혼을 대하여 용서하네 마네 하는 말을 하겠나. 곰곰 생각하니 자네에게 지은 죄도 한이 없네. 이 어리석은 놈이 그 죽일 놈의 말을 믿고…아흐."

 

하고 머리를 흔들며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부르르 떤다. 한갑에게는 열정이 있는 동시에 순한 듯한 그 성격 중에는 어느 한 구석에 야수성이 있었다. 그의 빛이 검고 피부가 거칠고 눈이 약간 하삼백인 것이 그의 무서운 성격을 보였다.

 

한갑은 몇 번이나 주먹을 쥐고 떨더니 죽은 아내의 가슴에 제 낯을 대고,

 

"내가 잘못했소. 죽을 죄로 잘못했소. 나를 용서해 달라고는 아니하오. 용서 못할 놈을 어떻게 용서하겠소. 당신의 가슴에 아픈 원한이 맺혔거든 그것을 풀어 주시오. 그리고 기쁘게 천국으로 가시오."

 

하고 소리를 내어 울었다.

 

선희도 울고 숭도 울었다. 한갑 어머니는 정신 잃은 사람 모양으로 가만히 있었다. 그의 희미한 눈 앞에는 꼬물꼬물하는 손자의 모양이 눈에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