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갑은 벌꺽벌꺽 그 물을 다 들이키고 도로 자리에 쓰러지더니 다시 일어나 앉으며,
"그깟놈의 아이 떨어지면 대수요? 죽어라, 죽어!"
하고 한번 뽐내고는 또 쓰러진다. 한갑의 머리에는 희미하게 질투가 북받쳐 오른 것도 있거니와 취한 생각에 제가 한 행동을 옳게 생각해보자는, 또 남아의 위신을 보전하자는 허영심이 솟아난 것이었다.
한갑의 술 취한 꼴, 말하는 모양을 보고 순은 남편에게 대하여 누를 수 없는 반감을 느꼈다. 순이가 한갑에게 시집을 온 것은 사랑이 있어서 한 일이 아니었다. 순은 숭에게 대한 사랑은 첫사랑인 동시에 마지막 사랑으로 일생을 안고 가려고 결심하였었다. 순은 두 번 사랑한다는 것을 믿지 아니하였다. 그의 속에 흐르는 조선의 피는 한 여자의 두 사랑을 굳세게 부인하였다.
그는 자기가 타고난 사랑을 숭에게 다 바쳐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순이가 한갑에게 시집을 온 것은 숭을 위함이었다.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순이가 제 사랑을 희생하는 것으로 숭을 불명예에서 구원해 내지 못한 것을 생각할 때에 오직 후회가 날 뿐이었다.
그러나 순은 한마디도 남편에게 대한 불평을 입 밖에 내려고는 아니하였다. 끝까지 숭에게 대한 자기의 희생을 완성하려고 굳게 결심하였다.
한갑은 또 코를 골았다. 그는 알콜의 힘과 피곤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었다.
닭이 울고 동편이 환하였다.
숭이가 의사를 데리고 왔을 적에는 순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배가 아프다고 가끔 깨어나서 고통을 하였으나 마침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의사는 태아가 벌써 죽었다는 것을 선언하고 출혈이 과하여서 태모의 생명도 위험하다 하여 고개를 흔들었다.
의사가 와서 진찰을 할 때에야 한갑이가 정신이 들어서 일어났다.
머리는 도끼로 패는 듯이 아팠고 눈은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눈 앞에 놓인 아내의 반쯤 죽은 참혹한 모양을 볼 때에 받는 마음의 아픔에 비겨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술을 할 수밖에 없으나 수술을 한대도 태모의 생명을 꼭 건지리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한번 해보는 게지요."
하고 의사는 마음에 없는 빛을 보였다.
"어린애를 살릴 수는 없습니까"?
하고 한갑 어머니는 의사가 일본말 섞어서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몸을 벌벌 떨며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힐끗 한갑 어머니를 보기만 하고는 대답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
하고 숭은 한갑에게 물었다.
"아무렇게든지 사람을 살려야지."
하고 한갑은 씨근씨근하며 힘없이 대답하였다.
"그러면 수술을 해도 좋은가. 태아는 벌써 죽었다니까."
하고 숭은 엄숙한 눈으로 한갑을 노려보았다.
한갑은 고개를 숙여 숭의 눈을 피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을 살려야지."
하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타태수술은 부모나 호주의 승낙이 없으면 안하는 것이니까."
하고 의사는 한갑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만 살려주셔요."
하고 한갑은 애원하는 어조로 말하였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그럼 승낙하시오"?
하고, 의사는 수술비는 허숭이가 담당할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안심하고 재차 물었다.
"그럼 살려야지요. 사람이 살아야지요."
하고 한갑은,
"수술을 하면 꼭 살아요"?
하고 의사를 쳐다보았다.
"어린애를 살려주시오."
하고 한갑 어머니가 두 손바닥을 마주대고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