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은 한 팔을 순의 목 밑에 넣고 한 팔을 무릎 마디 밑에 넣어서 순을 가만히 안아 쳐들었다. 그렇게도 제 품에 안기고 싶어하던 가엾은 순을 이렇게 불행하게 된 때에 안아주는 것이 슬펐다.

 

방문을 들어가 뉘이려 할 때에 순은 가만히 눈을 떴다. 저를 안은 것이 숭인 것을 보고 잠깐 놀라는 표정을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자리에 뉘이고 나서 일어설 때에는 숭의 팔과 가슴에는 순의 피가 빨갛게 묻었다.

 

"저는 시집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냥 선생님 댁에 있게 해 주셔요."

 

하고 지난 가을, 숭이가 순더러 한갑이와 혼인하기를 권할 때에 참으로 하기 어려운 듯이 말하던 것을 숭은 기억한다. 그러나 숭이가 재삼 권하는 말에는,

 

"그러면 무엇이나 선생님 하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다 저를 위하셔서 하시는 말씀이니깐."

 

하고 낯색이 변하고 울먹울먹하던 것을 숭은 기억한다.

 

순은 한갑에게 시집가고 싶어 간 것은 아니었다. 숭이가 한갑과 혼인하라니까 한 것이었다. 순의 생각에 자기의 숭에게 대한 사랑은 영원히 달할 수 없는 공상이었다. 그리고 제 처지에 일생을 혼자 살아간다는 것도 가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숭에게 대한 끊을 수 없는 애모의 정을 안은 채 한갑에게로 시집을 간 것이었다. 숭도 이것을 모름이 아니었다.

 

이마가 터져서 피가 흐르고 머리채가 끄들려서 흐트러지고 하체가 피투성이가 되어서 누워 있는 순을 바라볼 때에 허숭은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북받쳐 오름을 깨달았다.

 

"아아 불쌍한, 귀여운 계집애"

 

하는 한탄이 아니 나올 수가 없었다.

 

숭과 선희는 의사와 간호부 모양으로 이마 터진 데를 씻고 싸매고, 그리고는 선희에게 맡기고 숭은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였다. 초저녁에 떠돌던 구름도 사라지고 말았다. 끝없이 넓은 곳, 끝없이 오랜 덧에, 나고 괴로와하고 죽고하는 인생이 심히 가엾었다. 숭은 망연하게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선희가 순의 출혈을 막는 일을 제 힘껏 지식껏 다하고 밖으로 나와서 숭을 찾았다.

 

"의사를 불러야겠어요."

 

하고 선희는 하늘을 바라보고 섰는 숭의 곁에 와 서며 이마에 땀을 씻었다.

 

"피가 많이 나요"?

 

하고 숭은 꿈에서 깬 듯이 물었다.

 

"대단해요."

 

하고 선희는 한숨을 지었다.

 

"내가 가서 의사를 데려오지요. 그럼 여기 계세요. 계셔서 보아 주셔요.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고 숭은 읍을 향하고 걷기를 시작하였다.

 

선희는 숭의 모양이 어둠속에 사라지는 것을 보고 또 한번 한숨을 쉬고 숭이가 바라보던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영원한 찬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선희는 책에서 본 대로 순에게 소금을 먹이며 간호하고 있었다. 옆방에서는 한갑이가 드렁드렁 코를 골고 있었다. 가끔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를 중얼대고 있었다.

 

한갑 어머니는 정신없이 한편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이구, 이를 어쩌나"?

 

"좀 어떠냐"?

 

이러한 말을 할 기운도 없는 것 같았다. 마치 아무러한 생각도 없이 쉴새 없는 근심과 슬픔에 신경이 모두 무디어진 것 같다고 선희는 생각하였다.

 

"어머니."

 

하고 순이가 눈을 뜨고 불렀다.

 

"왜"?

 

하고 한갑 어머니는 무릎으로 걸어 며느리 곁으로 왔다.

 

"어머니, 저는 아무 죄도 없습니다."

 

하고 순은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