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부터 한갑의 태도는 돌변하였다. 그는 일도 아니하고 술만 먹으러 돌아다녔다. 그리고 집에 오면 순이를 볶았다.
순은 몇 번 간절한 말로 변명도 하였으나 변명을 하면 할수록 한갑의 의혹은 더욱 깊어지는 것 같아서 순은 다만 잠자코 참을 뿐이었다.
순의 생각에는 저를 위한 고통보다도 숭이 저를 위하여 사업에 방해를 받고 또 마음에 고통을 받는 것이 괴로왔다. 순은 어찌하면 숭의 누명을 벗겨 드릴 수가 있을까 하고 그것이 도리어 가장 큰 염려가 되었다.
하루는 한갑이 밤이 깊은 뒤에 술이 취해서 들어왔다. 그는 정근이와 함께 장에 가서 술을 잔뜩 먹고 돌아온 길이었다.
"이년, 이 화냥년! 또 숭이놈의 집에 서방질 갔니"?
하고 외치며 비틀비틀하고 문고리를 찾았다.
순이는 얼른 일어나 문고리를 벗겼다. 한갑의 몸에서는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개 같은 년! 이 화냥년!"
하고 한갑은 한 발을 방에 들여놓으면서 한 손으로 아내의 머리채를 감아쥐어서 앞으로 끌어당기었다. 무심코 섰던 순은 문지방에서 어깨와 머리를 부딪고 남편의 가슴을 향하고 쓰러졌다.
한갑은 몸을 비키면서 순의 머리채를 홱 끌어당기어 순은 다섯 달 된 배를 안고 토당(툇마루 있을 땅)에 픽하고 엎드러졌다.
"이 개 같은 년! 이 화냥년!"
하고 한갑의 발은 수없이 엎어진 아내의 등과 어깨와 볼기짝 위에 떨어졌다.
순은 아프단 말도 못하고 다만 픽픽픽할 뿐이었다.
"이년 죽어라! 뒤어져라!"
하고 한갑은 술기운을 빌어 기고만장하여 호통을 쳤다.
밤마다 있는 술주정이라 또 하는구나 하고 누워 있던 한갑 어머니는 그 어릿한 귀에도 무슨 심상치 아니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문을 열치며,
"이게 웬일이냐. 글쎄, 이놈아. 밤마다 술을 먹고 와서는 지랄을 하니. 돈은 어디서 나서 이렇게 날마다 술을 처먹는단 말이냐."
하고 어스름한 속에 허연 무엇이 엎어진 것을 보고 한갑이 어머니는 깜짝 놀라서 웃통은 벗은 채, 고쟁이 바람으로 뛰어나오며 이게 무어냐 하고 소리를 질렀다.
한갑 어머니는 더듬더듬 순이가 엎어져 있는 데까지 걸어오더니 순이가 쓰러진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아 이놈아, 글쎄 이게 웬일이냐. 홀몸도 아닌 사람을."
하고 허리를 굽혀 순의 팔을 잡아 일으키려다가 팔에 기운이 없는 것을 보고 더욱 놀라 순의 머리를 만지며,
"아이고, 이 애가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구나. 아가, 아가."
하고 불러도 순은 대답이 없었다.
"그깟년 내버려 두우. 죽어라, 죽어."
하고 한갑은 발길을 들어 순의 옆구리를 한번 더 지르고 비틀비틀하며 밖으로 나가 버린다.
"아가, 아가."
하고 한갑 어머니는 순을 안아 일으키려다가 기운이 없어서 못하고 방에 들어가서 석유 등잔에 불을 켜 들고는 다시 나온다.
순의 머리 밑에는 피가 뻘겋게 빛났다. 그리고 순의 몸은 느껴 우는 사람 모양으로 들먹거렸다.
"이를 어쩌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한갑아, 한갑아!"
하고 소리껏 두어번 불러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그 망할 녀석이 제 애비 성미를 받아서 그러는구나. 요새에는 웬 술을 그리 처먹고, 아가 아가. 일어나 방에 들어가 누워라. 내가 기운이 없어서 너를 안아들일 수가 없구나. 원 이 일을 어쩌나. 동태나 안되었나. 아이구 이를 어쩌나. 이 애 치마에도 피가 배었구나. 아이구머니나, 하혈을 하는구나. 아이구, 이를 어쩐단 말이냐. 그 몹쓸 놈이 어디를 어떻게 때렸길래. 아이구, 이거 큰일났구나. 아가, 아가!"
한갑 어머니는 혼자 쩔쩔매고 갈팡질팡 하더니 등잔불을 안방에 들여다놓고 옷을 주워 입고 어디로 나가 버린다.
동네에서는 개들이 쿵쿵 짖었다.
한갑 어머니는 달음질하듯 숭의 집으로 달려갔다. 급한 일에는 숭의 집에밖에 갈 곳이 없는 것이었다.
숭의 집에서는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갑 어머니는 잠깐 발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 떠드는 소리는 분명히 한갑의 소리였다.
"저놈이 또 저기 가서 지랄을 하는구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더욱 걸음을 빨리 걸었다.
한갑은 숭의 집 마당에서 숭의 멱살을 잡고 숭을 때리고 있었다. 숭은 다만 한갑의 발길과 주먹을 막을 수 있는 대로 막을 뿐이요, 마주 때리지는 아니하는 모양이었다.
"이놈. 이놈, 죽일 놈. 이놈, 네가 나를 감옥에 잡아넣구, 내 계집을 버려 주구. 어 이놈. 나허구 죽자."
이러한 소리를 뇌까리고 또 뇌까리며 숭에게 대들었다. 숭이가 힘이 세어 한갑이 마음대로 잘 때려지지 아니하는데 더욱 화를 내어서 돌아가지 아니하는 혀로 욕설만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