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중에는 정근이라는 청년을 보고 반가운 빛을 보이는 애는 드물었다. 그들은 부모가 유 산장을 원망하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은 까닭이었다. 또 그들은 산장네 정근이가 일본 가서 공부한다고 돈만 없이한다고 산장이 화를 낸다는 말을 들었다. 산장네가 작년부터는 협동조합 때문에 장리도 잘 아니 되고 빚을 줄 곳도 줄어서 논을 두 자리나 팔아서 정근의 학비를 주었다는 소리를 부모들이 고소한 듯이 말하는 말을 들은 것도 기억한다. 그래서 그들은,

 

"잘도 차렸네. 하이칼라다."

 

이러한 흥미밖에는 정근에게 대해서는 가지지 아니하였다.

 

"이거 좀 들고 가!"

 

하고 정근은 아이들 중에 큰 애를 단장 끝으로 가리키며 부르짖었다. 가리킴 받지 아니한 아이들은 저희도 그 대접을 받을까 두려워 뒤로 물러서고 가리킴을 받은 아이는 마치 기계적인 것같이 그 명령에 복종하였다.

 

큰 아이들이 정근의 짐을 들고 앞설 때에야 도망하려던 아이들이 다시 뒤를 따라섰다.

 

정근은 다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단장을 두르면서 살여울 동네로 향하였다.

 

그때에 마침 어떤 사람 하나가 지게를 지고 나오다가 정근을 보고 반가운 빛을 보이며 아이들이 들고 꼬부랑깽하는 것을 받아 제 지게에 짊어졌다.

 

"지금 차에서 내리는 길인가"?

 

하고 지게를 진 사람은 정근에게 물었다.

 

"내가 오는 줄을 알고도 아무도 안 나온단 말이오? 다들 죽었단 말이오"?

 

하고 정근은 화를 내었다.

 

"어디 자네가 오는 줄 알았나. 형님도 아무 말씀이 없으시니."

 

하고 이 가난한 아저씨는 먼 촌 조카의 짐을 지고 일어선다.

 

"내가 집으로 전보를 했는데 동네에서들 몰라"?

 

하고 아저씨에게 대한 조카의 어성은 매우 불공하였다. 이렇게 큰 소리가 나는 것도 까닭이 없지는 아니하였다.

 

삼년 전으로 말하면 제가 평양만 가서 공부를 하다가 방학에 돌아오더라도 전보 한 장만 치면 온 동네가 끓어 나왔던 것이다. 그러하던 것이 삼년을 지낸 오늘에 이렇게 한 사람도 아니 온다는 것은 창상지변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아저씨는 말없이 짐을 지고 길을 걸었다.

 

아이들 중에 먼저 뛰어 들어가서 보고한 사람이 있어서 산장네 집 식구들이 마주 나왔다. 산장네 머슴 사는 미력이라는 사람이 달음박질쳐서 앞서 나와서 보통학교 아이 모양으로 정근을 보고 허리를 굽혔다.

 

"이 자식, 인제 나와."

 

하고 정근은 인사하는 미력의 등을 단장으로 후려갈겼다.

미력은 영문도 모르고 아프단 말도 못하고 아저씨의 짐을 받아 졌다. 지게를 지니 매맞은 등이 몹시 아팠다.

 

정근은 반가와하는 가족들을 보고 모자도 벗지 아니하였다.

 

"아버지 안 계시우."

 

하고 집에 들어온 정근이는 병든 어머니를 보고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아버지가 사랑에 계신 게지. 나가 뵈려므나."

 

하고 어머니도 낯을 찡그렸다.

 

"내가 오늘 온다고 전보를 놓았는데 그래 아무도 안 나온단 말이오"?

 

하고 정근은, 아버지는 찾으려고도 아니하고 문지방에 걸터앉으며 소리를 질렀다.

 

"전보가 왔는지 무엇이 왔는지 아니"?

 

하고 어머니는,

 

"요새 아버지가 무슨 말씀은 하신다든? 안에는 진지 잡수러도 안 들어오신단다. 이놈의 세상이 망할 놈의 세상이 되었다고. 동네 놈들이나 일가 놈들이나 도무지 발길도 아니한다고. 그 허숭이 녀석이 이 동네에 들어와서부터는 협동조합인가 무엇인가 만들어 가지고 모두들 장리를 내어 먹나 돈을 얻어 쓰나. 그런 뒤부터는 우리 집에는 그림자도 얼씬 않는단다. 그 연놈들의 뼈가 뉘 집 덕으로 굵었다구. 말 말아, 그래서 아버지는 홧병이 나셔서 도무지 집안사람보고도 말이 없으시단다."

 

하고 말을 하였다.

 

정근이가 안방 문지방에 걸터앉아 있을 적에 부엌 앞에는 정근의 아내가 어느새에 새 옷을 입고 너덧 살 먹은 아이 녀석 하나를 머리를 만져 주면서 들릴락말락한 조그만 소리로,

 

"가서 아버지! 그러고 불러."

 

하고 훈수를 하여 준다.

 

아이 녀석은 흙과 때 묻은 손가락을 빨고 커다란 눈으로 정근을 힐끗힐끗 보면서 싫다고 몸을 흔든다. 그래도 아내는 자식을 통하여 남편의 자기에게 대한 주목을 끌어볼 양으로,

 

"어서 가 그래!"

 

하고 아이녀석의 옆구리를 찌르며,

 

"너의 아버지야. 가서 아버지, 하고 좀 매달려!"

 

하고 소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