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정근이보다 더 늙었다. 그리고 무슨 속병이나 있는지 혈색이 좋지 못하다.

 

청춘에 남편이 그리워서 그러하기도 하겠지마는 이 집 가풍이 여자는 찬밥과 된장밖에 못 얻어먹고 병이 들어도 의원 하나 보이지 않는 까닭도 있을 것이다. 시어머니가 병이 들어도 약 한 첩을 얻어먹기가 어렵거든 하물며 며느리야.

 

"장손아, 가서 아버지, 그래."

 

하고 아내는 아이 녀석을 잡아 흔든다.

 

장손이는 마지못해 두어 걸음 아비를 향하고 나가다가 아버지의 무정한 시선이 제 위로 밀려서 다른 데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그만 용기를 잃고 어미 치맛자락으로 돌아와 버린다.

 

"숭이 녀석이 와서 우리 험구를 해요"?

 

하고 정근은 어머니의 말에 분개한 어조로,

 

"그 녀석이 무엇이기에. 제 계집 남한테 빼앗기고-참 숭이 여편네가 서방질하다가 들켜서 차에 치여 죽으려다가 살아나지 않었어요. 그 녀석이 고개를 들고 다녀요? 변호사 노릇도 못해먹고 쫓겨난 녀석이"?

 

하고 침을 뱉는다.

 

"숭이 여편네가 서방질 했니"?

 

하고, 어머니는 무슨 신기한 소식이나 들은 것같이 아들의 곁으로 다가앉는다.

 

"그럼요. 모두 신문에 나구 야단들인데 어머니는 꿈만 꾸시네."

 

하고 정근은 비로소 찌푸린 상판대기를 펴고 재미나는 듯이,

 

"그럼요. 게다가 산월이라는 기생하고 죽자사자 해서 왜 산월이가 기생 고만두고 여기 와서 유치원 한다지요. 우리 아이들도 가우"?

 

"아니, 안가. 우리 아이들은 안 간다. 아버지가 숭이 녀석이라면 불공대천지수로 아시는데, 아이들 보내실라든? 오 그년이 기생년이야. 뭐 대학교 졸업한 처녀라던데."

 

"대학교가 다 무엇이오? 전문학교는 졸업했지요. 그리고 기생질하던 년인데 서울서는 누구나 다 안답니다. 흥, 미친 녀석, 기생 첩 데리고 와서 유치원 시키구 아주 겉으로는 점잖은 체하면서-왜 신문 보니깐두로 초시네 순이도 숭이 녀석이 버려 주었다던데."

 

하고 정근은 더욱 분개한다.

 

"오오, 그래"?

 

하고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렇겠지. 말만한 계집애를 반년이나 한집에 두고 있었으니 성할 리가 있나. 그저 그렇게 실컷 버려놓고는 한갑이헌테 시집을 보냈구나."

 

"순이가 한갑이헌테 시집갔수"?

 

하고 정근은 놀란다.

 

"그럼. 한갑이가 지지난 달엔가 감옥소에서 나와서 유치원에서 혼례식을 했단다."

 

"흥."

 

하고 정근은,

 

"그렇지, 첩을 둘씩 둘 수야 있나. 한갑이 녀석도 미친 자식이지. 그래 헌 계집을 얻어가지고 좋아하는구먼."

 

하고 자못 유쾌한 모양이다.

 

이때에 장손이는 어미의 말에 못 견디어,

 

"아버지."

 

하고 뛰어와서 어머니가 시킨 대로 무릎에 와 매달린다.

 

"저리 가."

 

하고 정근은 매달리는 아들 장손을 버러지나 떼어 버리는 듯이 밀쳐버린다.

 

장손이는 "으앙" 하고 울면서 비틀거리고 제 어미한테로 달려가서 개한테 물리기나 한 것같이 악을 쓰고 운다.

 

"거 왜 그러느냐."

 

하고 어머니는 화를 내며,

 

"어린 것이 애비라고 반가와서 매달리는 것을 그럴 법이 어디 있니? 그게 무슨 짓이냐. 너는 자식 귀한 줄도 모르니? 너도 너의 아버지 모양으로 자식에게 그렇게 무정하단 말이냐, 원. 유가네 집은 종자가 다 그런가 보구나."

 

하고 꾸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