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아, 글쎄 이 배은망덕하는 놈아. 아무러기로 네 놈이야 허 변호사에게 이리할 수가 있단 말이냐."

 

하고 한갑 어머니는 한갑의 어깨에 매어달려 발을 동동 구르며,

 

"너 감옥소에 가 있는 동안 내가 누구 덕에 살었니. 허 변호사가 나를 친어미보다 더 위해 주었는데, 이놈아, 글쎄 어미를 보기로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자 가자."

 

하고 한갑을 잡아 끌며,

 

"허 변호사도 잠깐 와 주게. 이 녀석이 며느리를 때려서 하혈이 몹시 되는 모양인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 피를 흘리구 쓰러진 것을 혼자 두구 왔는데. 이 술취한 녀석의 말에 노하지 말구 좀 와주게."

 

하고 한갑을 끌고 어둠속에 사라졌다.

 

한갑은 기운이 지쳤는지 어머니가 끄는 대로 끌려간다.

 

"이 애야. 너 그 정근이 녀석한테 무슨 소리를 들었나 보다마는, 그 녀석의 말을 어떻게 믿니? 그 녀석 난봉 녀석 아니냐. 허 변호사가 이 동네에 들어온 뒤로 유 산장네 장리 벼가 시세가 없어서 그집 식구들은 허 변호사를 잡아먹으려 드는데 네가 정근의 말을 믿고 허 변호사와 네 처를 의심하다니 말이 되니?

 

네 처로 말하면 내가 꼭 한방에 데리고 있었는데 무슨 의심이 있니. 의심이 있으면 내가 먼저 알지, 네나 정근이가 안단 말이냐. 또 허 변호사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 정근이 녀석이 돌아온 뒤로 동네 인심이 변한 모양이더라마는 다들 잘못이지, 잘못이야. 허 변호사나 유치원 선생이나 다 제 돈 갖다가 동네 위해 좋은 일 하는데 그 은혜를 몰라보고 이러니저러니 말이 되나.

 

내가 그렇게 타일러두 도무지 듣지를 아니하고 그 난봉 녀석의 말을 믿구서, 글쎄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처가 저렇게 하혈을 하니 뱃속에 아이가 성할 수 있나. 아이, 이년의 팔자야. 죽기 전에 손주새끼라두 한번 안아볼까 했더니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왜 죽지를 않구 살아서 이 꼴을 보는지. 네 아버지가 젊어서 술을 먹구 사람을 때려서 그 사람이 그 빌미로 죽은 일이 있느니라. 네 아버지가 마음이 착하지마는 울뚝하는 성미가 있구 술이 취하면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성미가 있더니 너두 그 성미를 닮었구나. 그래두 네 아버지는 친구를 그렇게 죽인 뒤로는 도무지 술을 입에두 아니 대구 말두 아니하구 그리셨단다."

 

이렇게 집까지 가는 동안에, 한갑 어머니는 아들을 향하여 여러 가지 말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이구 저거, 어린애가 떨어졌으면 어떻게 해"?

 

하고 혼자 한탄을 하였다. 한갑 어머니에게 이제 남은 소원은 <손주새끼>를 안아보는 것이었다.

한갑 어머니 눈앞에는 꼬물꼬물 하는 손주가 보이던 것이었다. 그에게는 며느리가 죽는 것보다는 손주가 떨어지는 것이 더 중한 일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순은 아직도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한갑은 어머니의 말에는 대답도 아니하고 비틀거리고 따라왔다.

 

한갑은 머리가 아프고 몸이 노곤한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정신은 아무리 분명히 차리려 하여도 마치 깨어진 질그릇 조각을 모아서 제대로 만들려는 것 모양으로 모여지지를 아니하였다. 그의 고개는 꼬박꼬박 앞으로 수그러만 지고 눈은 감겼다. 다리가 이리 놓이고 저리 놓이고 하였다.

 

읍내 갈보 집에서 정근에게 실컷 술을 얻어먹고 또 잠깐 자기까지 하고 나온 것이었다. 숭이가 죽일 놈이라는 것, 숭이가 전에는 물론이어니와 지금도 때때로 숭과 순이가 밀회한다는 것, 순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 줄 아느냐, 하는 것 등의 선전을 받고 이 십리나 넘는 길을 달음박질로 온 그였다. 단순한 생각을 가진 한갑은 정근의 그럴 듯한 선전에 그만 더 참을 수가 없이 되어 감옥에서 아내 죽인 죄수에게 듣던 이야기 그대로 실행을 해본 것이었다.

 

그러나 술이 주던 기운이 없어지매 한갑은 그만 폭 누그러졌다. 그는 무슨 큰 일을 저지른 듯도 싶고 또 당연히 할 일을 다 못한 듯도 싶었다. 가끔 고개를 번쩍 들고 무엇이라고 중얼대나 곧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머니가 하는 말도 어떤 말은 귀에 들어오고 어떤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아니하였다.

 

한갑은 토당에 쓰러진 아내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번쩍 들며,

 

"이년 죽어라. 이 개같은 년 같으니."

 

하고 한번 뽐내고는 어머니한테 끌려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숭은 선희를 데리고 응급 치료 제구를 들고 한갑의 집으로 왔다. 숭은 한갑의 신이 문 밖에 놓인 것을 보았다. 선희는 무엇을 무서워하는 사람 모양으로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숭은 전후를 돌아볼 새가 없었다. 순의 곁에 쭈그리고 앉아서 순의 팔목을 들어 맥을 보았다. 처음에는 맥이 끊어진 것 같았으나 서투른 사람이 하는 모양으로 이리저리 옮겨 쥐어 보아 희미하게나마 맥이 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희는 숭의 눈만 바라보고 있다가 숭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보아서 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선 방으로 들여 뉘어야겠습니다."

 

하고 숭은 순의 피 흐르는 이마를 만지며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어머니는 덜덜 떨며 숭과 선희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숭의 말에 비로소 마음을 놓은 듯이,

 

"그럼 아랫간에 들여 뉘이지."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자기가 깔았던 요를 바로잡아 깔고 베개를 바로 놓고,

 

"자, 이리루 들어오지. 원 괜찮을까."

 

하고 문에서 내다보고 있다. 그 주름잡힌 검은 얼굴, 그 쥐어뜯다가 남겨 놓은 듯한 희뜩희뜩한 머리카락, 그 피곤한 듯한 찌그러진 눈. 불빛에 비취인 한갑 어머니의 모양은 산 사람 같지는 아니하였다. 일생에 근심과 가난에서 잠시도 떠나보지 못하고 부대끼운 그에게는 절망하거나 슬퍼할 기운도 없는 것 같았다. 그처럼 무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