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애는 벌써 죽었어요. 태모의 생명도 꼭 살아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요. 피가 많이 쏟아져서 심장이 대단히 약해졌으니까. 원 이 심장이 배겨날까."

 

하고 의사는 아무쪼록 옷이 더러운 방바닥에 닿지 아니하게 하려는 자세로 환자의 두 팔목을 잡는다.

 

"이거 원 맥이 약해서."

 

하고 의사는 간호부를 시켜 주사 준비를 시킨다.

 

순의 흰 팔을 걷어 올리고 의사는 무색 투명한 약으로 주사를 놓았다. 그리고 팔목을 붙들고 맥이 살아나오기를 기다리며 눈을 벌리고 회중전등으로 비치어보기도 하였다.

 

한갑만을 입회시키기로 하고 숭은 선희와 한갑 어머니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한갑 어머니는 들어가 본다고 몇번이나 숭의 팔을 뿌리쳤으나 숭은,

 

"안 가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하고 굳이 말렸다.

 

"아이고, 이 늙은 년이 죽더라도 손주 새끼만 살려 주우. 그게 죽으면 내가 어떻게 사나. 우우."

 

하고, 한갑 어머니의 감정은 마치 얼어붙었던 것이 녹아 터지는 모양으로 소리를 치며 울기 시작하였다.

 

"영감!"

 

하고 의사가 문을 열고 방에서 나오며 숭을 부른다.

 

"네? 어찌 되었어요"?

 

하고 숭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의사는 숭의 곁으로 가까이 와 서며, 일본말로,

 

"도저히 지금 수술을 할 수는 없습니다. 워낙 피를 많이 잃어서 심장이 약해졌으니까. 수술을 하더라도 수혈을 하거나 하기 전에는 안되겠고, 수혈을 한다 하더라도 여기는 기구가 없고, 또 도저히 혼자서는 할 수가 없으니까."

 

하고 담배를 꺼내어 피운다.

 

"그럼, 어찌하면 좋아요"?

 

하고 숭은 초조하였다.

 

"글쎄요. 원 출혈하는 환자를 읍으로 데리고 가기도 어렵고, 고마리마시다나(야단났는데요)."

 

"그러면 도와드릴 의사를 한 분 더 청할까요. 내가 곧 갔다가 오지요."

 

"헌데, 대단히 중태란 말씀이야요. 수술을 한대도 원 자신이 없습니다그려."

 

"그야 힘껏 해보셔서 안되는 거야 어찌합니까.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아야지요."

 

의사는 제가 눈에 들었던 순이가, 제 첩으로 달래다가 망신만 당하는 원인이 되었던 순이가 이 지경을 당하여 제 손에 생명을 맡기게 된 것이 마음에 고소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꼭 살려낼 자신이 없는 제 솜씨가 미약한 것이 부끄럽기도 하였다.

 

마침내 의사가 한갑이를 데리고 읍내로 들어가 수술 제구와 다른 의사를 데리고 오기로 하고 숭과 선희가 그 동안에 환자 곁에 있어서 삼십 분에 한번씩 강심제 주사를 하며 경계하기로 하였다.

 

의사가 젊은 의사를 데리고 수술 제구를 가지고 돌아온 것은 세 시간쯤 뒤였다. 그는 급한 환자들을 대강 보고 작년에 의전을 졸업하고 새로 개업한 의사를 데리고 왔다.

 

첫째로 할 일은 수혈이었다. 혈형을 검사한 결과 순의 피에 맞는 것은 숭의 피뿐이었다.

 

"내 피를 넣어도 좋은가"?

 

하고 숭은 한갑에게 물었다.

 

"면목 없네. 어찌해서든지 살려만 주게. 자네 은혜는 백골난망일세."

 

하고 한갑은 숭을 바라보았다.

 

숭은 한갑의 말에는 대답을 아니하고 의사가 명하는 대로 누워서 왼편 팔의 피를 뽑혔다.

 

순은 수혈 받을 팔을 소독할 때에 눈을 떴다. 낯선 사람들이 많이 둘러선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선희는,

 

"피를 넣수. 허 선생님 피를 빼어서 넣수. 이 피를 넣으면 나을 테니 안심하우."

 

하고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순은 눈을 굴려서 숭을 찾았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