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그까짓 게 무슨 자식이오? 내 자식이 그래요? 저렇게 괭이새끼같이 눈깔만 크고, 더럽고."
하고 벌떡 일어난다.
"그럼 이 애가 뉘 아들이오? 원 못 들을 소리를 다 듣눈."
하고 칼로 찔러도 말 한마디 못할 듯하던 아내가 한마디 단단히 쏜다.
"흥, 꼴에 무에라고 주둥이를 놀려? 흥, 눌은밥도 못 얻어먹고 쫓겨나고 싶은가 보군. 내가 이번에는 용서하지 아니할걸."
하고 정근이가 뽐낸다.
"옳지. 일본 가서 남 무엇인가 하는 계집년허구 배가 맞아서 잘 놀았다더구먼. 그 망할 년이 어디 서방이 없어서 남의 처자 있는 사내를 따라당긴담. 그년이 남의 서방헌테 정이 들었으면 둘째 첩으로나 세째 첩으로나 살 게지 왜 이혼은 허래.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나는 이 집에 와서 죽두룩 일해 주구 아들 낳아 바친 죄밖에 없어. 날 누가 내어쫓아. 어디 내어쫓아 보아!"
하고 아내는 여자에게 용기를 주는 질투의 힘으로 남편에게 대든다.
"이년 무엇이 어쩌구 어째"?
하고 정근은 아내의 앞으로 대들며,
"이년 또 한번 그따위 주둥이를 놀려 보아라. 당장에 때려 죽이고 말 테니."
하고 단장을 둘러멘다.
장손이가 엄마를 부엌으로 끌어들이며 발버둥을 치고 운다.
"때려 죽여 보아! 때려 죽여 보아! 어디 때려 죽여 보아! 내가 무엇을 잘못했어? 어디 말 좀 해보아! 내가 부모께 불공을 했어? 행실이 부정했어, 내가 무엇을 잘못했어? 응, 왜 말을 못해? 내가 이 집에 시집 올 때에는 친정에서 논 한 섬지기 밭 이틀갈이 가지고 왔어! 서울 갑네 일본 갑네 하구 공부는 뉘 돈으로 했는데. 오 인제는 남가년한테 반해서 나를 내쫓을 테야. 옳지! 아들까지 낳아 바쳤는데 무슨 죄루 날 내쫓을 테야"?
"엄마 엄마"하고 울고 치맛자락을 끌고 부엌으로 들어가려는 장손의 뺨을 손바닥으로 딱 후려 갈기면서,
"이놈의 자식, 왜 우니, 왜 울어"?
하고 두 번째 때리려는 것을 피하여 장손은 부엌 속으로 달아났으나 그래도 뒷문으로 빠져나가지는 않고,
"엄마, 엄마."
하고 벌벌 떨며 운다.
어머니는 듣다못해 뛰어 나오며,
"아서라, 아이어멈. 그렇게 말하는 법이 아니다. 어디 남편보고 그렇게 말하는 법이 있느냐. 우리는 젊어서 남편이 아무런 말을 하더라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어린 것은 왜 때리느냐. 아서라 그래서는 못 쓴다."
하고 며느리를 책망하고, 다음에는 아들을 향하여,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오면 처자를 반갑게 대하는 게지 그래서 쓰느냐. 열 첩 못 얻는 사내 없다고 사내가 젊어서는 오입도 하고 첩도 얻지. 그렇지마는 귓머리 풀고 만난 처권을 버리는 법은 없어! 일본 있으면서 밤낮 편지루 이혼이니 무엇이니 하고 듣기 싫은 소리만 하니 애 어멈인들 맘이 좋겠느냐. 어서 그러지 말고 처가 속의 맘을 풀어 주어라. 그 원 왜들 그러느냐."
하고 어머니의 지혜를 보인다.
"아니 이년이 글쎄 언필칭 남가년, 남가년 하니 그런 말법이 어디 있어요. 남인숙으로 말하면 아주 깨끗하고 얌전한 여성입니다. 첩이라니, 그가 누구의 첩으로 갈 여성이 아냐요. 또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구. 내가 그 여성을 조금 존경은 하지요. 그런데 저년이 언필칭…."
"글쎄 왜들 이리 떠들어"?
하고 유 산장이 상투바람으로 사랑 뒷창으로 고개를 쑥 내밀며,
"이놈아, 공부합네 하고 돌아다니다가 집에라고 돌아오는 길로 애비도 안 보고 집안에 분란만 일으켜? 그래 일본까지 가서 배워 온 것이 그따위란 말이냐. 집안 망할 자식 다 있다."
하고는 문을 닫아 버린다.
날뛰던 정근도 애비 말에는 항거를 못하고 화가 나는 듯이,
"내가 무엇하러 이놈의 데를 왔어"?
하고 대문 밖으로 홱 나가 버리고 만다.
그는 어디로 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