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 주사해주어."
하고 정선은 팔을 내밀었다.
"안돼. 좀 기다려보고."
"아이구, 이거 못 살겠어."
"좀더 참어."
"어떻게 참어"?
"새벽이 되면 낳을걸."
"아이구, 나는 못 참어. 나를 어떻게 죽여주어, 응. 못 참겠으니 죽여주어요. 또 나 같은 년이 살면 무얼 해"?
"글쎄 왜 그런 소릴 해, 좀 참지 않고? 마음을 굳세게 먹어야 된대."
"아이구, 아퍼. 아이구, 허리 끊어져. 내가 무슨 죄로 이럴까."
"죄가 무슨 죄야. 아담 이브의 죄면 죄지."
"어린애가 나오기로 그것을 누가 길러. 내가 죽으면 누가 길러"?
"원 별소리가 다 많군. 정선이가 죽거든 허 선생이 안 길러"?
"아냐, 아냐. 내가 죽으면 어린애도 안고 갈 테야. 지옥으로 가든지 유황불 구덩이로 가든지, 어린애는 안고 갈 테야."
하고 정선은 깜빡 정신을 잃어버린다.
"정선이, 정선이!"
하고 선희가 정선을 흔들어도 대답이 없다.
"정선이, 정선이"부르는 소리에 숭이가 뛰어 건너왔다. 선희는 정선의 말을 생각하여 홑이불로 정선의 몸을 가리어주었다.
"암만해도 의사를 불러와야 할 것 같습니다."
하고 선희가 숭에게 자리를 비키면서 말한다.
"의사를 제가 싫다니까 부르기도 어렵구만요. 또 부른대야 산부인과 전문하는 이는 물론 없구."
하고 숭은 민망한 듯이 이마에 손을 대며 정선을 들여다본다.
정선은 마치 장난꾼 아이가 몸이 곤해서 세상 모르고 자는 모양으로 사지를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입으로 침을 흘리며 코를 골고 있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마침내 정선에게서 모든 절제력을 빼앗아버린 것이었다.
"산모가 이렇게 자는 것이 좋지 않다는데."
하고 선희는 정선의 맥을 짚어본다. 선희가 보기에는 맥이 약한 것만 같았다.
"그래두 의사가 와야지 어떻게 해요? 어찌 될지 압니까. 겁이 납니다."
하고 선희는 애원하는 듯이 숭의 낯을 바라보았다.
"아냐, 싫어. 의사 싫어."
하고 정선은 잠꼬대 모양으로 중얼거렸다.
"의사가 와야 얼른 아이를 낳지."
하고 선희는 떼쓰는 딸을 책망하는 모양으로 짜증을 내는 듯이 말하였다.
"싫어. 나 죽는 거 보기 싫거든 다들 가요. 어머니가 저기 오셨는데…같이 가자고. 나 옷 입고 어린애 데리고 같이 가자고. 어머니 나하고 같이 가요. 어머니 계신 데 같이 가요."
하고 정선은, 반은 정신이 있는 듯, 반은 없는 듯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 말끝에 또 진통이 돌아와서 정선은 낯을 찡그리고 몸을 비틀고 눈을 떴다. 숭과 선희는 몸에 소름이 끼침을 깨달았다. 더구나 어린애를 데리고 간다는 말이 숭에게 비상한 쇼크를 주었다.
"여보."
하고 정선은 숭의 손을 찾았다. 숭은 얼른 정선에게 제 손을 주었다.
"나를 용서해주셔요."
하고 정선은 숭의 손을 쥐고 떨었다.
숭은 말이 없었다. 정선은,
"나를 용서해주셔요.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알아주셔요. 당신 같은 좋은 남편을 잘 섬기지 못하고 용서 못할 죄를 지은 아내를 용서해주셔요. 나는 차마 이 뱃속에 있는 아이를 낳아가지고 당신 앞에서 살 면목이 없어요. 나는 내 죄의 결과를 뱃속에 넣은 채로 나는 가요. 정선아, 내가 네 죄를 다 용서한다, 마음놓고 죽어라, 그래 주셔요."
하고 소리를 내어 느껴가며 울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오? 나는 당신을 용서한 지가 오래요. 그런 생각 말고 상심도 말고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하고 숭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정선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아냐요, 아냐요. 날 용서 아니하셔요! 날 불쌍히는 여기시겠지. 당신이 맘이 착하시니깐 불쌍한 계집애라고는 생각하시겠지. 그렇지마는 용서는 아니하셔요. 나를 참으로 사랑하지는 아니하셔요. 당신이 의지가 굳으시니깐 일생이라도 나를 사랑하시는 모양으로 꾸며가실 줄은 믿어요. 그렇지만 나를 정말 용서하고 사랑하실 수는 없어요."
하고 고개를 베개에 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