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진통이 왔다. 정선은 선희의 손을 꽉 붙들고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선희도 덩달아서 손과 전신에 힘을 주었다. 정선의 진통이 지나가고 이마와 전신에 땀이 흐를 때에는 선희의 이마와 전신에서도 땀이 흘렀다.

 

"선희!"

 

하고 진통이 지나간 틈에 정선은 선희의 손을 끌어다가 제 가슴 위에 놓으며 정답게 말하였다.

 

"난 죽어."

 

하고 정선은 울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다 하네. 어느 어머니나 아이 낳을 때에는 다 그렇지. 그러길래 낳는 아픔이라고 안해? 인제 한두 시간만 지나면 아이가 나올걸. 아이만 나오면 씻은 듯 부신 듯이라는데."

 

하고 선희는 위로를 하였다.

 

이러한 때에 숭이가 들어오면 정선은,

 

"당신은 건넌방에 가서 주무셔요."

 

하고 손을 홰홰 내저어서 나가라는 뜻을 표하였다.

 

그러면 숭은 말없이 돌아서 나갔다. 숭은 정선의 속을 아는 것이다. 남편의 자식 아닌 자식을 낳느라고 아파하는 아내의 마음을 숭은 알아주었다. 숭도 제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숭은 건넌방에 가서 드러누워도 보았다. 그러나 안방에서 아이구구 하는 소리가 들릴 때에는 기계적으로 벌떡 일어나서는 안방을 들여다보았다. 아내가 끊어진 다리를 버둥거리며 애를 쓰는 양을 볼 때에는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을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막혔다.

 

"들어오지 말어요."

 

하는 아내의 울음 섞인 애원을 듣고는 숭은 견디지 못하는 듯이 마당으로 뛰어 내려갔다.

 

밖에는 번개가 번쩍거리고 굵다란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음산한 바람이 구름을 날리고 있었다. 천지가 모두 무슨 아픔을 못 견디어 하는 것 같았다.

 

밤은 깊어갔다. 우뢰소리가 들리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정선의 진통은 더욱 심하여지는 모양이었다. 정선은 선희의 두 손을 끊어져라 하고 비틀었다. 그리고 죽여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진통이 지나간 뒤에는 정신을 잃은 듯이 눈을 감고 졸았다. 선희는 이것이 책에서 본 자간이라는 무서운 병이 아닌가 하여,

 

"정선이, 정선이."

 

하고 정선을 흔들어 깨웠다.

 

"인생에 가장 큰 아픔이다."

 

하는 생각을 선희는 하고 앉았다.

 

정선의 생명이 어찌 될는고, 그 생명이 아픔 때문에 너무 켕겨서 금시에 끊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선희, 용서해주어, 응."

 

하고 어떤 한굽이 진통 끝에 정선은 선희의 손을 제 가슴 위에 얹고 말하였다.

 

"용서가 무슨 용서야? 무어 잘못한 것 있던가."

 

하고 선희는 정선의 이마의 땀을 씻었다.

 

정선은 선희에게 무슨 할말이 있는 듯하다가는 아픈 것이 아주 끝나버리면 말을 끊었다.

 

또 한번 된 진통이 지나간 뒤에 정선은 기운없이 눈을 뜨며,

 

"선희, 날 용서해요. 내가 지금까지 선희를 미워했어. 겉으로는 드러내지 아니했지마는 속으로는 미워했어. 선희가…"

 

하고 정선은 선희를 안아다가 선희의 귀에다가 입을 대고는,

 

"선희가 허를 사랑하는 것이 미워서. 나는 선희 속을 알아요. 아니깐 미웠어.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선희밖에 이 세상에는 내 뜻을 말할 데가 없구려. 하늘에나 땅에나 나무에도 돌에도 붙일 곳이 없는 나 아니오? 내가 죽더라도 선희가 내 눈을 감기고 염도 해주어, 응? 나는 다른 사람의 손이 내 몸에 닿는 것이 싫어. 손이 닳는 것은커녕 눈이 내 몸을 보는 것도 싫어. 선희만은 내 더러운 몸과 마음을 다 알고 만져주우, 응."

 

하고 정선은 또 눈물을 흘렸다.

 

"글쎄, 왜 그런 소리를 해"?

 

하고 선희는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억지로 누르면서,

 

"정선이! 내가 살여울 있는 것이 정선이한테 고통이 되거든 내 여기서 떠나께. 내가 정선이한테 고통을 주었다면 내가 잘못했수. 나는 정선이 말마따나 나무에도 돌에도 붙일 데가 없는 사람이니깐 정선이 집을 믿고 여기 와 사는 게지. 내 떠나주께."

 

하고 선희도 눈물을 씻었다.

 

또 정선에게 진통이 왔다. 이번 진통은 거의 삼분이나 계속되는 것 같았다. 밖에서는 우뢰와 빗소리가 요란히 들렸다. 시계는 새로 세시.

 

"선희."

 

하고 정선이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서,

 

"저 가방 속에는 무슨 약이 있소"?

 

하고 물었다.

 

"피투이트린이라는 주사약하고, 애기 눈에 넣을 초산은 물하고, 몸이랑 입이랑 씻길 기름하구, 그런 게야."

 

하고 선희는 가방을 열고 약들을 내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