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솟았다. 그 구름 그 폭풍우는 어디로 갔는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첫 가을날의 빛을 보였다. 숭의 집에서는

 

"으앙 으앙."

 

하는 어린애 소리가 들렸다. 정선은 딸을 낳은 것이었다.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어 또 한 해가 지났다.

 

살구꽃도 다 지고 사월 파일도 지난 어느 날, 살여울 앞에는 자동차 한 대가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면서 와 닿았다.

 

그 자동차에서는 아주 시크하게 양복으로 차린 청년 하나가 회색 소프트 모자를 영국식으로 앞을 숙여 쓰고 팔에는 푸른빛 나는 스프링을 들고 물소뿔로 손잡이를 한 단장을 들고 대모테 안경을 썼다. 그리고 입에는 궐련을 피워 물었다.

 

운전수가 트렁크와 손가방을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기타인 듯한 것을 내려놓고는 자동차 문을 닫고 차 세를 받으려고 청년의 앞에 서서 기다린다.

 

"도오시딴다이 잇따이? 뎀뽀오모 웃데아루노니(어찌 된 셈이야, 대관절, 전보도 놓았는데)."

 

하고 청년은 매우 불쾌한 듯이 동네를 바라보며 일본말로 중얼댄다. 탁음과 액센트가 그리 잘하는 일본말은 아니다.

 

"가겠습니다, 찻세 주세요."

 

하고 젊은 운전수는 참다 못하여 청구한다.

 

"이꾸라(얼마)"?

 

하고 청년은 여전히 일본말이다.

 

"사원 팔십 전입니다."

 

하고 운전수는 조선말로 대답한다.

 

"용엔 하찌짓센? 다까이쟈나이까(사원 팔십 전? 비싸)"?

 

하고 청년은 더욱 불쾌한 듯이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 작정을 하시고 타시지 않으셨어요"?

 

하고 운전수의 어성도 좀 높아진다.

 

"난다이 곤나 보로지도오샤가(이게 다 무에야, 이런 거지 같은 자동차를 가지고)."

 

하고 청년은 단장으로 자동차의 옆구리를 한번 찌르고,

 

"도오껄오나라 세이제이 고짓센다요(동경 같으면 잘해야 오십 전야)."

 

하고 눈을 부릅뜬다.

 

"동경은 동경이요 조선은 조선이지요. 값을 정해놓고는 다 타고 와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요"?

 

하고 운전수의 말도 점점 불공하게 된다.

 

"난다? 난다또? 모오이찌도 잇데 미이(무엇이 어째? 또 한번 그런 소리를 해 봐)."

 

하고 청년이 운전수의 어깨를 떠민다.

 

"사람을 때릴 테요"?

 

하고 운전수도 대들며,

 

"여기서 이럴 것 없으니 저 주재소로 갑시다."

 

하고 운전수는 청년의 팔을 꽉 붙든다.

 

청년은 두어 걸음 끌려가더니,

 

"이 팔 놓아!"

 

하고 팔을 뿌리치고는 기운없이 바지 주머니를 뒤져 지갑에도 넣지 아니한 지전 뭉텅이를 꺼내어 오원박이 한 장을 골라서 바닥에 내어던지며,

 

"돗데 이께, 빠가야로오(가져가거라! 망할 자식)."

 

하고 입에 물었던 궐련을 침과 아울러 손도 대지 아니하고 퉤 뱉어버린다.

 

운전수는 말없이 돈을 집어넣고 운전대에 올라앉아서 차를 돌려놓고는 고개를 내밀고,

"이건 왜 이 모양이야. 돈도 몇 푼 없는 것이 되지 못하게시리. 국으로 짚세기나 삼고 있어. 네 에미 애비는 무명 것도 없어서 못 입는데 되지못하게 하이칼라나 하면 되는 줄 아니"?

 

하고 차를 스타트해 가지고 슬근슬근 달아나며 욕설을 퍼붓는다. 받을 돈 받아 놓고 차 떠내 놓고 분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이러는 동안에 동네 아이들이 자동차 구경 겸 하이칼라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산장네 정근이야."

 

하고 아이들은 수군거렸다.

 

정근은 이 동네 부자라는 유 산장의 아들로 동경 가서 공부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