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로 흥분한 정근은 거의 본정신을 잃은 듯하였다. 그는 주재소에 자현한다고, 자현해서 허숭의 죄를 없이한다고 주장하였다. 작은갑은 굳이 만류하여 숭의 집으로 끌고 왔다.
정근은 정선과 선희를 보고,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하고 일본 무사 모양으로 마루에 엎드렸다.
작은갑은 정선과 선희에게 대하여 정근이가 심기일전한 전말을 대강 말하였다. 그리고 동네를 위하여 돈 육만 원을 내어놓고 일만 육천여 원의 채권을 포기하였단 말을 하였다.
정근은 눈물 섞어 숭과 순이의 관계는 자기가 다 지어냈다는 것과, 숭과 선희와의 관계에 대한 악선전도 다 자기가 지어낸 것이라는 것과, 숭이가 자기의 죄를 다 알면서도 법정에서 한 마디도 발설하지 아니하였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자기는 경찰에 자현하여 숭과 선희와 한갑이와 순이와 작은갑이의 애매한 것을 밝혀야 한다는 것을 말하였다.
정선과 선희는 정근의 손을 잡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위로하였다. 정근은 미친 듯이 흥분하여 스스로 억제할 바를 몰랐다.
정근은 이러한 큰 결심을 한 이튿날 형무소에 허숭을 면회하였다. 허숭은 더운 감방에서 그물을 뜨고 앉았다가 유정근이라는 사람이 면회를 청한다 하여 일변 놀라고, 일변 의아하면서 간수에게 끌려 나갔다.
정근은 숭의 얼굴이 나타나는 맡에,
"도무지 면목이 없네. 오늘 나는 자네에게 사죄를 하고 앞으로 해 나갈 일을 의논하러 왔네."
하고 단도직입으로 온 뜻을 말하였다.
숭은 대답할 바를 몰라서 다만 물끄러미 정근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모든 죄를 다 깨달았네. 그리고 동네 사람들한테 자백을 했네. 인제 자네하구 한갑이한테만 자백하면 마지막일세."
하고 그 동안 모은 돈 육만 원을 사업 기금과 교육 기금으로 살여울을 위하여 내어놓기로 하였다는 말과, 남은 채권 일만 육천여 원을 탕감했단 말을 하고,
"이런 것으로 내 죄가 탕감되리라고는 믿지 않네. 나는 검사국에 자현해서 자네가 무죄한 것을 변명할 결심도 가지고 있네마는 그렇게 한다고 꼭 자네가 무죄가 될는지가 의문이야. 그래서 똑바로 말이지, 나는 세상에 있어서 자네가 나올 때까지 자네가 하던 일을 해보려고 하네. 나는 그것이 자네 뜻인 줄 아네, 안 그런가"?
숭은 아직도 대답할 바를 찾지 못한다. 도무지 이것은 믿기지 아니하는 일이다. 정근이가 무슨 생각으로 자기를 놀려먹는 것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자네가 내 말을 안 믿으리. 그렇지마는 나는 자네를 미워하고 적으로 알아서 없애버리려고 하다가 필경은 자네의 인격에 감복한 것일세. 나는 새 사람이 되려네. 자네를 따르는 충실한 제자가 되려네. 나를 믿어 주게."
하고 정근은 두 손을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경찰에서나 법정에서나 자네가 나만 끌어 넣으면 죄는 내가 지고, 자네는 무사하였을 것을 나는 아네. 그렇지만 자네는 나를 끌어 넣지 아니하고 애매한 죄를 달게 지지 않었나. 나도 사람일세. 사람의 맘이 있는지라 삼사 년이 지난 오늘날에라도 제 죄를 깨달은 것이 아닌가. 이 사람, 나를 믿어 주게, 이처럼 말을 하여도 나를 못 믿나"?
하고 정근은 또 한번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다.
"정근군, 고마우이. 나는 인제 자네를 믿네. 기쁘이. 살여울 하나만 잘 살게 되면야 나는 옥에서 죽어도 한이 없네."
하고 숭은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인다.
"어서 할 말만 해!"
하고 간수가 재촉을 한다.
"네, 할 말만 하지요."
하고 정근은,
"그러면 내가 이 육만 원 돈을 가지고 어떻게 일을 할 것을 일러 주게, 무엇이든지 자네가 하라는 대로 하려네."
숭은 이윽히 생각하다가,
"서울 가서 한민교 선생을 찾아보고 그 어른을 살여울로 모셔 오고, 그래서 그 어른이 하라는 대로만 하게. 자네 한 선생 알지"?
"응, 말은 들었지. 뵈온 일은 없어."
"한 선생이 가장 조선을 잘 아시네. 조선에 무엇이 없는지 무엇이 있어야 할지를 가장 잘 아시는 이가 그 어른이니, 그 어른께 만사를 의논하게."
하고 숭은 선생을 생각하였다.
"그 어른이 살여울에 오시겠나"?
"오시겠지."
"그럼, 내가 이 길로 서울로 올라가겠네. 가서 자네 말을 하고 한 선생을 만나겠네."
하고 잠시 더할 말을 생각하다가,
"자네 부인, 따님, 다 무고하시니 염려 말게."
하고는 간수의 재촉으로 숭의 얼굴은 가리어졌다.
정근은 처음 경험하는 감동을 가지고 물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