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박사는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다. 이 박사의 마음에도 괴로움이 생긴 것이었다. 인제는 교회도 떠나버렸다. 점잖은 친구들도 다 자기를 받지 아니하게 되었다. 여자들은 다 자기를 피하게 되었다. 잡지들이 자기를 놀려먹던 기사조차 인제는 써 주지 아니하게 되었다. 생각하면 적막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교회에를 다닌댔자 어느 천년에 신용을 회복할 것 같지도 아니하고, 무슨 사회적 활동을 하려 하여도 인제는 거들떠보아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면 돈은 벌어지느냐 하면 그러할 밑천도 재주도 없었다. 텍사스에서 돈 백원이나 받는대야 그걸로는 저축이 될 성도 싶지도 아니하였다. 게다가 인제는 나이도 사십이 가까와 오지 아니하는가. 세상에서 버려진 몸은 생각할수록 적막하였다.
현 의사는 만날 적마다 이 박사를 놀려먹고 공박하였다. 그러나 현 의사밖에는 그렇게라도 자기를 아랑곳해 주는 이도 없었다. 가끔 현 의사에게 아픈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래도 적막해지면 이 박사의 발은 현 의사의 집으로 향하였다. 처음에는 현 의사를 제 것을 만들어 보려고 따라다녔으나 벌써 그 야심을 버린 지는 오래다. 이 박사가 보기에 현 의사는 하늘에 핀 꽃이었다. 그래도 현 의사를 아니 따를 수는 없었다.
현 의사도 귀찮게 생각은 하면서도 이 박사를 영접하였다. 영접한다는 것보다도 오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올 때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희롱하는 모양으로 희롱하였다. 아무러한 말을 하여도 성도 안 내는 것이 좋은 장난감이었다. 유시호 불쌍하게 생각하는 때도 있었다.
그러한 때에는 한번 악수를 하여 주었다. 이 박사는 현 의사의 손을 한번 잡으면 울 것같이 감격하였다. 현 의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손을 내어 주면 이 박사는 여왕의 손을 잡으려는 신하 모양으로 허리를 굽히고 그 손을 잡았다. 어떤 때에 그 손등에 키스를 하다가 뺨을 얻어맞은 일도 있었다.
"저것은 무엇에 소용이 될꾸"
하고 가끔 현 의사는 이 박사를 보고 생각하였다.
"Good for nothing(무용지물이라는 뜻)"
하고 입 밖에 내어 말한 일도 있었다.
이 박사 자신도 무용지물인 것을 의식하는 모양이었다.
"영어나 좀 가르쳐 보구려."
이렇게 현 의사는 이 박사의 소용처를 찾아도 보았다.
"허허허허."
하고 이 박사는 웃을 뿐이었다.
공회당은 상당히 만원이었다. 순례의 모교의 서양 사람 선생들도 보이고, 그의 동창인 아름다운 여자들도 떼를 지어서 순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순례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딸의 영광을 보려고 맨 앞줄에 와서 가슴을 두근거리고 앉아 있었다. 순례의 어머니는 아직 젊지마는 그 아버지는 벌써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에 주름이 잡혔다. 사년이나 만리 타국에 떠나 있던 딸이 돌아온 지가 한 달이 넘었지마는 아직도 밤에 문득 잠을 깨어서는 딸이 멀리 미국에 있는 것만 같았다.
이 박사와 현 의사도 보였다.
시계의 바늘이 여덟시를 가리키고도 이삼 분 더 지난 때에 주최자인 조선 음악회를 대표하여 이전의 A교수가 작은 몸에 연미복을 입고 단상에 나타났다. 일동은 박수를 하였다.
A교수는 이렇게 심순례를 소개하였다.
"이 사람은 우리 조선에 새 천재 한 분을 소개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압니다."
하고 심순례의 약력과 그가 어떻게 아름다운 인격을 가지고 또 어떻게 큰 재주를 가지면서도 힘써 공부하였는가를 열 있는 말로 설명한 뒤에, A교수는 한층 소리에 힘을 주어서,
"그러나 이상에 말씀한 모든 아름다운 것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을 심순례씨가 가졌습니다. 그것은 조선적인 것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의 성격이 조선 사람의-조선 여성의 가장 아름다운 것을 구비하였거니와, 이것은 심순례씨의 예술에서 가장 분명히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연주할 곡조 중에 <아아 그 나라>라는 것과 <사랑하는 이의 슬픔>은 심순례씨 자신의 작곡이라 말할 것도 없지마는 서양 사람이 지은 곡조를 치더라도 그의 손에서는 조선의 소리가 울려나옵니다. 한 말씀으로 치면 심순례씨는 서양 악기인 피아노의 건반에서 순전한 조선의 소리를 내는 예술가입니다. 심순례씨야말로 진실로 조선의 딸이요, 조선의 예술가라고 할 것입니다."
하고 심순례를 불러내었다.
집이 떠나갈 듯한 박장 소리에 낯을 붉히고 나서는 심순례는 오년 전보다 약간 몸이 야위어서 호리호리하였다. 모시 적삼에 모시 치마를 입고 그리 굽 높지 아니한 까만 구두를 신었다. 어느 모로 보든지 미국에 다녀온 현대 여성같지는 아니하고, A교수가 소개한 바와 같이 조선의 딸다운 얌전과 겸손과 수줍음이 있었다.
순례는 은사 되는 A교수의 열렬한 청중의 박수갈채에 잠깐 지나쳐 흥분함을 깨달았다. 눈이 아뜩아뜩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순례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마치 기도하는 사람 모양으로 일이 분 동안 고개를 숙이고 앉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