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발등만 덮는 흙 묻은 버선(이것은 목다리라고 부른다)을 신고 나가는 길에 닭장을 열어준다. 아직도 어둡다. 닭들은 끼륵끼륵 소리를 하며 뛰어나온다.
오늘은 숭이 집 밭을 가는 날이다.
숭이가 겨리를 따라 밭을 나간 뒤에 집에서는 정선이가 선희와 유순과 한갑 어머니를 데리고 겨리꾼들의 점심을 차리고 있었다.
정선은 아직 다리 잘린 자리가 굳지 아니하여 고무다리는 대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서 방에서 마루 출입이나 하였다. 오늘은 정선이도 마루에 나와 앉아서 북어도 뜯고, 상도 보살폈다. 정선이나 선희나 다 손은 낮지마는 눈은 높아서 여러 가지로 반찬을 만들어보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정선이가 손가락 하나를 베고, 선희는 두 군데나 베었다.
"아이구, 그 고운 손을."
하고 한갑 어머니는 그들을 애처롭게 여겼다.
"어떻게 한갑 어머니는 그렇게 무를 잘 썰으셔."
하고 한갑 어머니가 곤쟁이 지지미에 넣을 무우를 썰고 앉았는 것을 보고 칭찬하였다. 기실은 한갑 어머니는 그렇게 잔 채를 잘 치는 정도는 아니었다. 원체 시골서도 너무 잘다고 할 정도의 잔 채는 칠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마는 한갑 어머니의 뼈만 남은 시꺼먼 손가락 끝이 칼날의 바로 앞을 서서 옴질옴질 뒤로 물러가면서, 거의 연속음이라 할 만한 싹둑싹둑 하는 소리를 내며 무우채를 치는 양은 정선과 선희의 눈에는 신기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인내시우, 내 좀 해보게."
하고 선희는 한갑 어머니의 도마를 끌어당기었다.
"또 손 벨라구, 그 고운 손을."
하고 주름잡힌 웃음으로 찌그리며 도마를 내어주었다.
선희는 손가락 끝을 옴질옴질 뒤로 물리면서 무우를 썰었다. 생각과는 달라서 무우가 고르게 썰어지지 아니할 뿐더러 몇번 칼을 움직이지 아니하여서 칼든 팔목이 자갯바람이 날 듯이 아팠다.
"어느새에 팔이 아파"?
하고 정선은 이 일에 대해서는 선배인 태도를 보였다.
"내가 팔이 아프다니"?
하고 선희는 아픈 팔을 참고 승벽으로 무우를 썰기를 계속하였다. 칼이 마음대로 베고 싶은 곳이 베어지지를 아니하였다.
"아차!"
하고 할 때에는 선희의 장손가락 끝에서 빨간 피가 흘렀다. 식칼이 새로 사온 일본 칼인데다가, 숭이가 손수 숫돌에 갈아서 날이 섰던 까닭이었다. 선희의 왼쪽 장손가락 끝이 손톱 아울러 베어진 것이었다.
"이그, 저를 어째"?
하고 한갑 어머니가 싸맬 것을 찾을 때에 정선은,
"에그머니!"
하고 일어나려 하였으나 한 다리가 없음을 깨닫고,
"순아, 순아."
하고 부엌에서 불을 때고 있는 순을 불렀다.
순은 한 손으로 머리에 앉은 재를 떨고 한 손에 연기 나는 부지깽이를 든 채로 부엌에서 나왔다. 정선이가 부르는 소리가 너무 황황하였던 까닭이다.
"방에 들어가 약장에서 가제하고 탈지면하고 또 붕대하고 또 옥도정기하고 내 와."
하는 정선의 명령에 유순은 부지깽이 끝을 땅바닥에 쓱쓱 비벼서 불을 꺼서 부엌에 던지고 통통 뛰어서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건넌방에 질서한 책장과 유리창 달린 약장이 있었다. 이 약장에는 의사 아니고도 쓸 수 있는 약품, 응급 구호품이 들어 있었다. 유순은 다 제 손으로 벌여놓은 것이라 어디 무엇이 있는지를 다 알 뿐더러, 이 속에 있는 약의 용도도 다 알았다. 이를테면, 숭은 원장이요, 순은 간호부였던 것이었다.
순은 정선이가 가져오라는 것을 다 가져다가 정선의 앞에 놓았다.
"자, 손가락 인내."
하고 정선이가 손을 내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