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은 아직 제 치마주름 한번 잡아본 일도 없었다. 집에는 의례 침모가 있는 법으로 생각하였다. 정동 집에는 침모도 차집도 다 있지 아니하냐. 그러나 이 꼴하고, 신문에 나고, 다리 하나 끊어지고 서울로 갈 면목은 없었다. 살여울 갈 면목도 있는 것은 아니지마는 그래도 이 세상에서 저를 돌아보아주는 사람은 남편밖에 없지 아니하냐. 이 병신 된 몸을 의지할 곳은 남편밖에 없지 아니하냐. 이렇게 생각하면 눈물이 솟았다.

 

"내 낫거든 살여울로 가께. 옷도 꿰매고 반찬도 만드께."

 

하고 정선은 낯 근육을 실룩거리며 울었다.

 

하루는 서울서 숭에게 전화가 왔다. 숭은 그것이 혹시 장인에게서 온 것이 아닌가 하였다. 장인이나 처남에게서는 지금까지 엽서 한장도 없었다.

 

전화에 나타난 것은 여자의 소리였다. 그가 누구라고 말하기 전에 그 소리의 주인은 산월인 것이 분명하였다. 그 목소리는 알토인 듯한 가라앉고도 다정스러운 목소리였다.

 

"저 선희입니다. 백산월이라야 아시겠죠"?

 

하는 것이 허두다. 그 음성에서는 기생다운 것이 떨어지고 없다.

 

"네."

 

하고 숭은 무엇이라고 대답할 바를 찾지 못하였다.

 

"부인 어떠셔요? 일어나셨어요"?

 

"아직 누워 있습니다."

 

"괜찮으시지요"?

 

"이제 죽기는 면한 모양입니다."

 

"다리는"?

 

"다리는 잘라버렸지요."

 

"네"?

 

하고 산월은 놀라는 모양이었다.

 

"잘랐어요. 그렇지만 살아났으니 고맙지요."

 

하고 숭은 하염없이 웃었다.

 

"저런! 그럼요. 살아나신 것만 다행하지요."

 

하고 산월은 한참 잠잠하다가,

 

"저, 병원으로 좀 찾아가도 좋아요"?

 

하고 묻는다.

 

"어떻게, 여기를."

 

하고 숭은 좋다는 뜻도 좋지 않다는 뜻도 표하지 아니하였다. 산월이가 찾아오는 것이 아내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는지 모르는 까닭이다.

 

"불편하시겠지마는 낮차로 찾아가겠습니다. 꼭 좀 의논할 말씀도 있구요-선생께 걱정을 끼칠 말씀은 아닙니다. 그럼, 이따 가께요. 정선이보시고 제가 온다더라고 그리셔요."

 

하고 이편의 대답은 듣기도 전에 산월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숭은 방에 돌아왔다.

 

"집에서 왔어요"?

 

하고 정선은 조급하게 물었다.

 

"아니. 백선희씨한테서 왔어. 낮차에 오마구."

 

하고 숭은 대수롭지 아니한 것같이 대답하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렇게 편할 수는 없었다.

 

이날 서울서 의족 만드는 사람이 왔다. 일전에는 그 사람이 석고를 가지고 와서 정선의 성한 쪽 다리를 본떠 가더니, 이번에 그 본에 비치어서 다리를 만들어 가지고 왔다. 비단 양말을 신기고 구두를 신기고 보면 성한 다리와 다름이 없었다.

 

정선은 숭에게 겨드랑을 붙들려서 침대 위에 일어나 앉기까지는 하였지마는 고무다리 만드는 사람 있는 곳에서는 그것을 대어보기를 원치 아니하였다. 그래서 숭은 그 사람을 내보내고 저 혼자 있는 곳에서 고무다리를 맞추어보았다.

 

아직 끊은 자리가 굳지를 아니하여 좀 아팠다. 그러나 아픈 것 때문은 아니요, 고무다리를 대지 아니하면 안되게 된 것 때문에 정선은 숭의 가슴에 매달려서 울었다.

 

"이게 다 무어야. 내다 버려요!"

 

하고 정선은 그 고무다리가 보기 싫다고 이불을 쓰고 울었다.

 

숭은 고무다리를 잘 싸서 정선이가 보지 않는 곳에 가져다가 두었다.

 

"나는 고무다리 안 댈 테야."

 

하고 정선은 떼를 썼다.

 

"대고 싶을 때에만 대시구려."

 

하고 정선을 무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