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낯이 문득 변한다.

 

"그런 말씀을 길게 할 것은 없구요. 어쨌으나 저는 이제는 기생은 그만두었습니다. 여기서 올라간 이튿날부터요. 신문에 무엇이라고 쓰인 것이 맘에 걸린 것도 아니구요. 왜 그런지 기생 노릇은 아니하기로 결심을 했단 말씀야요. 세상에서들은 그 신문을 보고 마치 큰 변이나 생긴 것처럼 야단들이래요. 도무지 집에 앉았을 수가 있나. 굉장히 부르러 오고 찾아오지요. 권번에는 폐업한다고 다 말을 했건만도 아니라고, 아마 신문에 난 것 때문에 그런가 보다고, 내야 어떻겠느냐고, 위로해줄 테니 오라고, 이런 사람들도 있겠지요? 기가 막혀."

 

하고는 무슨 크게 재미있는 것이 생각이 난 듯이,

 

"그런데 말야요. 요전 허 선생하구 차에서 이 박사 안 만나셨어요"?

 

하고 숭에게로 몸을 돌린다.

 

"네, 만났지요."

 

하고 숭은 그때 광경을 그려본다.

 

"그때에 제가 이 박사를 놀려먹었지요? 들으셨어요? 여러 번 주신 편지는 답장을 못 드려서 미안하다고, 또 세 번이나 찾아오신 것을 대문 밖에서 돌아가시게 해서 미안하다고, 글쎄 이랬답니다. 그랬더니 그 담에 알고보니깐, 그 자리에 있던 두 여자 속의 하나가 이 박사와 약혼 말이 있던 여자랍니다그려. 일본 어느 고등 사범인가 졸업한 여자라는데, 그만 그 이튿날로 이 박사를 탁 차버렸대요. 그리고는 이 박사가 또다시 심순례를 꾀어내려 든대, 얘."

 

하고 정선을 바라본다.

 

"미스 정은 어떻게 되었누"?

 

하고 정선이가 묻는다. 미스 정이라는 것은 정서분을 가리킴이다.

 

"정서분씨"?

 

하며 선희는,

 

"어림이나 있나, 이 박사가 정서분씨 생각이나 할 줄 아니? 이제 만일 순례한테 퇴짜를 맞으면 하루 이틀 심심파적으로 미스 정 집에 갈는지도 모르지, 그러면 미스 정은 그만 고마와서 허겁지겁으로 이 박사를 맞아들인단 말이다.

 

미스 정은 이 박사 같은 사람에게는 알맞은 빅팀(희생물)이란 말이다. 우리 같은 것은 너무 닳아먹어서 잘 넘어가지를 않고, 순례는 또 너무 애숭이구. 아무려나 이 박사도 이제는 볼일은 거의 다 보았어. 이번에 순례하구 틀어지면 이젠 마지막일걸. 응, 닥터 현한테도 다니는 모양이지마는 현이 누구라구. 이제는 이 박사도 청산할 때가 되었겠지."

 

숭은 선희가 점점 흥분하여 말이 많아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듣고 있었다. 산월이라는 기생은 결코 수다스러운 기생은 아니었다. 도리어 산월이라는 기생의 특색은 그의 숙녀다운 얌전이었다. 그는 별로 말이 없고 말 한마디를 하려면 앞뒤를 재는 것 같았다.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끈 것이었다. 이 점잖음이, 얌전함이,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서는 선희는 마치 무슨 흥분제를 먹어서 발양 상태에나 있는 것같이 말이 많았다. 그 알토 가락을 띠인 어성은 대단히 아름답고 유쾌하였다.

 

"순례는 너무 말을 잘 들어서 걱정이요, 나는 너무 말을 안 들어서 걱정이라고 이 박사가 그리겠지."

 

하고 선희는 말을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