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러면서도 정선은 하루에 한번씩 고무다리를 대어보았다. 그리고 한두 걸음씩 걸어도 보았다. 그리고 나서는 또 울었다. 마치 히스테리가 된 것 같았다.

 

자나 깨나 정선의 머리속에서는 고무다리가 떠나지 아니하였다. 눈을 감으나 뜨나 고무다리는 눈에 어른거렸다. 그러할 때마다 슬펐다.

 

산월이가 올 시간이 되었다. 숭은 산월이가 오기 전에 정선에게 산월과 저와의 관계를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런 델리킷한 문제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하고 마음을 썼다.

 

"선희씨가 당신이 병원에 입원하던 날 여기까지 와서 하룻밤을 자고 갔다우."

 

하는 것으로 길을 열었다.

 

"선희가 여기"?

 

하고 정선은 놀랐다.

 

"응, 내가 경성역에서 차를 타고 자리를 찾으러 다니다가 그 사람을 만났어. 그래 여기까지 같이 와서 하루 묵어 갔지요."

 

정선은 아내다운 의아의 눈을 가지고 숭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선은 선희가 학생 시대에 집에 다닐 적에 숭을 알던 것과, 또 숭이란 사람이 기생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다시 안심하는 것 같았다.

 

"내가 선희 집에 가서 하룻밤을 잔 일이 있지 않소? 강 변호사한테 붙들려서 술을 잔뜩 먹고는 인사 정신 못 차리고 있었는데, 자다가 깨어보니까 웬 모르는 집인데 곁에서 자는 사람이 산월이란 말야. 산월은 강 변호사가 부른 기생이거든. 그래서 그집에서 하룻밤을 지내지 아니하였소"?

 

하는 숭의 말은 좀 어색하였다. 그렇지마는 해야 할 말을 해버린 것은 기뻤다.

 

정선은 그 말을 듣고는 오장이 뒤집히는 듯함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숭을 존경하던 생각이 다 스러지고 격렬한 질투를 깨달았다. 그러나 정선은 제가 숭을 나무랄 사람이 못됨을 생각하고 다만 눈을 감고 사네발이 날 뿐이었다. 마치 정선의 피가 얼어붙는 듯하고 숨이 막히고 이가 떡떡 치우쳤다.

 

"저리 가요."

 

하고 한참이나 있다가 정선은 남편을 노려보고 소리를 질렀다.

 

숭은 아무 말도 아니하고 곁방으로 가서 유월이를 정선의 병실로 들여보냈다.

 

"이년 무엇하러 왔어? 저리 가!"

 

하고 정선이가 외치는 소리가 곁방에 있는 숭의 귀에 들렸다.

 

유월이는 정선에게 쫓겨나서 숭에게로 왔다.

 

정선은 혼자서 울고 있었다.

 

"나는 고무다리, 선희는 성한 몸"

 

하고 정선은 선희가 제게 무서운 원수나 되는 것같이 생각혔다. 선희가 곁에 있으면 칼로 찔러 죽이고 싶었다.

 

이때에 선희는 간호부를 따라 정선의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정선은 그것이 선희인 것을 직각적으로 알고 눈물을 씻고 눈을 감고 자는 모양을 하였다.

 

선희는 잠든 병인을 깨울까 저어하는 모양으로 발끝으로 걸어서 정선의 침대 곁으로 와서 우두커니 섰다.

 

이렇게 침묵이 계속하기 이삼 분. 선희는 초췌한 벗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한숨을 짓고 서 있었다.

선희는, 오늘은 산월이 아니었다. 머리는 학생 머리로 틀고 옷도 수수한 검은 세루 치마에 흰 삼팔 저고리, 학교에 다닐 때에 입던 외투와 핸드백을 손에 들고 모습을 감추기 위함인지 알이 검은 빛 나는 인조 대모태 안경을 썼다. 산월을 본 병원 사람들도 그가 산월인 줄을 안 사람이 없었다.

 

선희는 언제까지든지 정선이가 잠을 깨기를 기다리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