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아야 세상에서 할 일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을 구하신 것이오. 아무것도 아니하는 생명은 천하지마는 일할 생명은 한 나라보다도 귀하다고 하지 아니했소? 그런 생각 말고 맘을 편안히 가지고 어서 나으시오. 이제는 생명의 위기는 벗어났다고 의사도 그러는데."
하고 숭은 가제 조각으로 정선의 눈물을 씻어주었다.
그 후에도 정선은 정신만 들면 비관하는 소리를 하고는 울었다. 그러할 때마다 숭은 친절하고 다정하게 위로해주었다.
"내가 살아나면 당신은 나를 용서하시려오"?
이런 말도 하게 되었다.
"벌써 다 용서했소. 이제는 내가 당신에게서 받을 용서가 있을 뿐이오."
이렇게 숭은 대답하였다. 그럴 때에 숭의 마음에 거리낌이 없음이 아니나, 그 거리낌은 정선에게 대한 긍측한 정에게 눌려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병신이 되고 웃음거리가 되고 살면 무엇하오? 신문에 났지"?
이런 말도 하였다. 아직 죽고 살 것도 판정되지 아니한 이 때에 병신 되는 것, 남이 흉보는 것, 신문에 난 것 등을 생각하는 여자의 심리 상태가 신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하여서,
"병신이 되기로 무슨 상관요? 병신도 될 리 없지마는, 또 신문에 나거나 말거나, 남이 흉을 보거나 말거나, 그게 다 무슨 상관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일을 하면 그만 아뇨? 일은 모든 것을 이기오."
하고 위로하였다.
그렇게 말은 했으나 신문에 난 것은 숭에게도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일보의 기사는 분명히 이 박사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이 지국 통신으로 온 것을 보아서 더욱 그러하였고, 숭과 정선의 사진을 낸 것으로 보아 더욱 그러하였고, 이 사건의 전말이란 것을 보아서 더욱 그러하였다.
그 일보의 기사에 의하건대, 허숭은 겉으로는 군자의 탈을 썼으나, 기실은 색마여서 윤 참판 집에 식객으로 있는 동안에 정선을 후려내었고 정선과 혼인을 한 뒤에도 매양 남녀 관계로 가정 풍파가 끊이지 아니하였으며, 다방골 모 여의와도 관계가 있고, 마침내 일 년이 못하여 살여울에 농촌 사업을 한다고 일컫고 간 것도 그 동네에 있는 유순(가명 18)이라는 남의 집 처녀와 추한 관계를 맺은 때문이요,
유순의 부모가 죽은 것을 이용하여 공공연히 유순을 제 집에 데려다 두고 머리 땋아늘인 채로 첩을 삼았으며, 또 소송 일로 잠시 서울에 올라온 때에도 기생 산월과 정을 통하여 아내 정선을 돌아보지 아니하므로, 정선은 그 반감으로 재동 모 남작의 아들이요, 제대 법과 출신으로 역시 색마 이름이 높은 김 모와 정을 통하였다.
이 모양으로 지사 허숭의 가정은 불의의 연애의 이중주로 추악한 형태를 이루었다. 정선이가 철도 자살을 하던 날도 허숭은 기생 산월을 데리고 같은 침대차를 타고 떠났으므로, 정선은 질투와 가정에 대한 비관으로 마침내 정부를 데리고 불의 향락의 길을 떠난 남편이 탄 차에 차라리 몸을 던져 죽을 양으로 자동차부의 경-호 자동차를 타고 수색까지 따라가 몸을 기관차 앞에 던졌으나, 마침 궤도에 눈이 쌓이었으므로 수십 간을 밀려나가고도 생명은 부지한 것이라고 하고, 또 목격자의 담이라 하여 허숭이가 정선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는 것을 보고 기생 산월은 분개하여 개성역 뒤에서 일장의 희비 활극을 연출하였다고까지 하였다.
이 기사에 흥미와 의분을 느낀 편집자는 <志士假面(지사가면) 쓴 色魔(색마, 음란한 악마)>니, <不義變愛 四重奏(불의연애 사중주, 불륜의 연애를 4사람이 한다는 뜻)>니 하는 표제를 붙였다.
숭은 이 신문을 정선에게 보이지는 아니하였으나 신문에 났느냐고 정선이가 물어볼 때에 그렇다고 대답은 하였다.
아무려나 이 신문이 온 뒤로는 다소간 회복되었던 병원 내의 허숭 부처에게 대한 존경도 다 스러지고 사람들의 눈에서마다 조롱과 천대의 눈살이 흐르는 듯하였다.
그러나 허숭에게는 이것이 별로 큰일은 아니었다. 그보다도 만일 이번 불행이 새 기원이 되어서 정선이가 다리 하나를 끊더라도, 머리에 흠이 나더라도 좋은 아내가 되어주기만 하면 도리어 행복이라고 생각하였다. 오직 미안한 것은 유순이었다. 가명이라고 하면서 기실 본명을 쓴 것이 미웠다.
이것이 얼마나 유순의 일생에 큰 타격을 줄 것인가. 숭은 유순을 집에 데려다 둔 것을 후회하였다. 살여울 동네 사람도 그런 생각을 할는지 모른다. 숭은 맹한갑이가 다행히 무죄가 되어 출옥을 하면 그와 유순과를 혼인시키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번 상고가 기각될 줄을 잘 아는 숭은 유순을 어찌할까가 문제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선이가 병이 나아서 숭과 같이 살여울로 가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염려 마오. 우리 둘이 일생에 서로 잘 사랑하고 좋은 가정을 이루어가면 지금 무슨 말을 듣기로 어떠오. 이것이 다 우리 행복의 거름으로만 압시다."
하고 위로하였다. 그러나 그 위로가 정선을 안심시키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