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까지도 떠나고 온 사람입니다. 나는 일생에 다시 혼인도 아니하고 사랑도 아니하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하고 숭은 고개를 들어서 천장을 향하였다.

 

"부인과 떠나세요"?

 

하고 산월은 놀라는 듯이 숭의 몸에서 떨어졌다.

 

"네."

 

하고 숭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나 산월은 다시 숭에게 매어달렸다.

 

"한번만, 한번만입니다, 네. 꼭 한번만 저를 안아주세요. 그리고 꼭 한번만 키스를 하여주세요."

 

하고 산월은 마치 바스키트볼에서 하는 자세로 숭에게 뛰어올라서 숭의 입을 맞추었다.

 

이때에 날카로운 고동 소리가 들렸다. 긴 고동 뒤에는 작은 고동이 몇마디 연해 들리고 차는 갑자기 정거하려고 애쓰는 격렬한 진동을 하였다. 산월은 마치 무서운 소리를 들은 어린애 모양으로 숭의 조끼 가슴에 낯을 파묻고 숭에게 매어달렸다. 차는 정거하였다.

 

숭은 가까스로 산월을 떼고, 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온통 눈이다. 바른손 편을 보니 거기는 산 옆을 깎은 비탈이다. 소나무들이 눈을 이고 섰다.

 

승무원들이 등을 들고 기관차 편에서 뛰어온다.

 

"무슨 사고요"?

 

하고 숭은 차에 매달리면서 물었다.

 

"레끼시 데스(치어 죽었소)."

 

한마디를 던지고 승무원은 달아났다.

 

"치어 죽어."

 

하고 숭은 차에서 뛰어내렸다. 산월도 따라 내렸다. 다른 승객들도 많이 내렸다.

 

눈은 퍼붓는다.

 

"어디쯤이오."

 

하고 숭은 뛰어가는 어떤 승무원에게 물었다.

 

"수구 소꼬데스(바로 저기입니다). 마다 신데와 이나이요우데스(아직 죽지는 아니한 모양이오)."

 

하고 그도 뒤로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숭은 이상하게 가슴이 설레는 것을 깨달으면서 기관차를 향하고 뛰어갔다. 기관차 앞에서 한 이 미터 되는 눈 위에 가로 누운 시체 하나가 있고, 선로 눈 위에는 붉은 피가 점점이 줄기줄기 무늬를 놓았다.

 

숭이 기관차 머리를 지나서 시체 곁으로 가려는 것을 뒤에서 어떤 승무원이 붙들면서,

 

"잇자 이께마센(가지 말아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숭은 멈칫 섰다.

 

기관차의 이맛불빛에 그 시체는 양복 외투를 입은 여자인 것이 숭에게 보였다. 구두 끝의 까만 에나멜이 불빛에 반짝거렸다.

 

숭은 까닭없이 흥분되어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변호사라는 직업 의식으로 이 사건의 법률적 의미를 알아보려는 것만이 아니었다.

 

"에그머니!"

 

하고 산월도 따라와서 숭의 팔을 붙들고 섰다.

 

열차장인 전무 차장이 좀 점잖은 걸음으로 걸어서 시체 곁으로 가서 경찰의 임무를 맡은 사람이라는 태도로 우선 시체의 주위를 둘러보고, 피가 흐르는 시체의 머리를 들어보고, 또 의사가 하는 모양으로 시체의 가슴을 헤치고 거기 귀를 대어보고, 그리고는 손을 들어서 다른 승무원을 불렀다.

 

다른 승무원들은 장관의 명을 받은 군졸 모양으로 시체 곁으로 달려가서 열차장의 명령대로 그 시체를 안아 들고 숭이가 섰는 앞으로 왔다.

 

"에!"

 

하고 숭은 승무원의 팔에 안기어 힘없이 목을 늘이고 있는 시체의 얼굴을 보고 소리를 쳤다.

 

"정선이야!"

 

하고 산월도 소리를 쳤다.

 

"이 사람 아시오"?

 

하고 전무 차장이 숭의 말을 듣고 숭을 돌아보면서 발을 멈추고 묻는다.

 

"내 아내요!"

 

하고 숭은 시체의 뒤를 따라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