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무심코 한 병자로 정선을 보다가 마침내 그것이 정선인 것을 발견하고,

 

"정선이."

 

하고 놀라며 숭을 돌아보았다.

 

"이, 이, 윤정선이 아니오? 내가 잘못 알았습니까."

 

하였다.

 

"네 윤정선입니다."

 

하고 숭은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당신이 윤정선이 남편 되십니까"?

 

하고 아이비 부인은 정선과 숭을 번갈아보며 묻는다.

 

"네, 내가 허숭입니다."

 

"허 변호사."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부인, 이거 웬일입니까"?

 

하고 대단히 놀라고 근심된 모양으로 물었다.

 

숭은 대답할 바를 몰랐다.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삼각관계라 하는 것이 누구나 이 광경을 본 사람이면 나는 생각이었다. 어젯밤 차에서 그러하였고, 병원에서도 그러하였다. 산월이가 들어오는 것을 본 아이비 부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마땅치 못하다는 듯이 고개를 두어 번 흔들었다.

 

산월도 숭이가 불편하게 생각할 것을 짐작하고 곧 병원에서 떠나버렸다. 떠날 때에도 마음에는 한량없는 생각을 가졌건마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간다는 인사만 하고 가버렸다.

 

오정 때나 되어서 정선은 의식을 회복하였다. 정선의 눈이 첫번으로 뜨일 때에 그 눈에 든 것은 물론 숭이었다. 정선의 눈은 숭을 보고 놀라는 듯하였다. 그러나 의식이 돌아오는 동시에 고통도 더하여 정선은 낯을 약간 찡그렸다. 그러다가 지금 본 것이 과연 남편인가 하고 또다시 눈을 떴다.

 

"내요, 내요."

 

하고 숭은 정선의 얼굴에 제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정선은 알아보았다는 듯이 입을 벌렸으나 소리는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리고는 또 고통을 못 이기어 양미간을 찡긴다.

 

"여보, 괜찮다고 의사가 그러니 염려 마오."

 

하고 숭은 정선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정선은 숭의 손을 잡고 떨었다.

 

정선은 용이하게 위험 상태를 벗어나지 아니하였다. 머리를 부딪쳐 뇌진탕을 일으킨 것과 오른편 무릎의 뼈가 상한 것이 아울러 중증인 모양이었다. 정선의 의식은 가끔 분명하였으나 또 때로는 혼수 상태를 계속하였다.

 

숭의 전보를 받은 윤 참판은 병을 무릅쓰고 세브란스의 이 박사를 대동하고 내려왔다가 하룻밤을 자고 올라가버리고 병원에서는 숭과 유월이가 정선을 간호하고 있었다.

 

이 박사는 숭을 향하여, 뇌진탕은 안정으로 하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지마는, 다리 상한 것은 엑스광선 사진을 받아보아야 뼈 상한 정도를 알겠고, 만일 뼈가 많이 상하여 화농할 염려가 있다고 하면 다리를 무릎 마디 위에서 절단하지 아니하면 아니될는지도 모른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 병자를 천동할 수는 없으니 이삼 일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숭은 날마다 밤을 새웠다. 정선이가 잠이 든 듯한 동안에 숭은 교의에 걸터 앉은 대로 십 분이나 이십 분씩 잠깐 졸았다.

 

밤이면 정선의 고통은 더하는 듯하였다. 두통과 다리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정선은 앓는 소리를 하였다. 이것이 정선의 입에서 나오는 유일한 소리였다. 숭이 무슨 말을 붙이면 정선은 다만 눈을 한번 떠보고 입을 조금 벌릴 뿐이었다. 정선의 유일한 표정은 오직 고통을 못 이기어 하는 표정이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서울서 이 박사가 내려왔다. 정선의 오른편 다리는 마침내 끊어버리기로 결정이 된 것이었다.

 

"나는 죽어요!"

 

하는 것이 정선의 첫말이었다. 그가 처음 입을 열 만하게 된 날, 입원한 지 닷새째 되던 날, 정선은 남편을 보고,

 

"나는 죽어요!"

 

하였다.

 

"아니오. 아니 죽소. 의사도 괜찮다는데. 맘을 편안히 먹으시오."

 

하고 숭은 정선을 위로하였다.

 

"나는 죽어요. 내가 왜 안 죽었어? 꼭 죽을 양으로 기관차 앞에 뛰어들었는데, 내가 왜 안 죽었어? 기관차도 나를 더럽게 여겨서 차내버렸나"?

 

하고 정선은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