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은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산월이가 저를 따라서 이 차를 탔다는 것이 참말 같지 아니하였다.

 

"차표는 어떡하고"?

 

하고 숭은 의심을 품으면서 물었다.

 

"안 샀어. 살 새가 있나요"?

 

하고 산월은 그제야 생각이 나는 듯이 웃었다.

 

"그럼 부산서부터 오는 찻세를 물어야겠네. 그까짓게 대수요"?

 

하고 산월은 숭이가 아니 먹고 남겨둔 술잔을 당기어서 마신다.

 

"그럼 어디까지 가시려우"?

 

하고 숭은 좀 걱정이 된다는 듯이 묻는다.

 

"귀찮아하시면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고, 귀애해주시면 선생님 가시는 데까지 따라가구. 귀찮으시지? 기생년하구 같이 다닌다고 체면 손상되시지? 그럼 어떻게 해요? 불길같이 일어나는 사랑을 죽입니까. 사랑을 죽이거나 몸을 죽이거나, 둘 중에 하나를 죽인다면 나는 몸을 죽일 테야요."

 

하고 말이 다 끝나기 전에 조선사람의 골격과 상모를 가진 양복 입은 셋이 들어와서 산월이 쪽을 바라본다.

 

"우리 나가요."

 

하고 산월이가 먼저 일어선다.

 

숭도 따라 일어나서 새로 들어온 패들에게 등을 향하고 보이를 불러 셈을 치르고, 일 이등 차실이 있는 방향으로 나갔다. 숭이나 산월이나 새로 들어온 사람들과 정면으로 마주 대하기를 원하지 아니한 것이었다.

 

식당 문을 열고 나서니 찬바람이 더운 낯에 불었다. 더 가야 이등실이요, 다음이 일등이어서 거기 서서 다음 정거장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숭은 차 벽에 기대어서 무심히 허공을 바라보고 섰다. 밖에는 여전히 눈이 오는 모양이어서 유리창으로 내다보이는 것이 오직 흰빛뿐이었다.

 

산월은 비틀비틀 흔들리는 몸을 억지로 평형을 잡으려다가 불의에 몸이 쏠리는 듯이 숭의 두 어깨에 손을 대고 숭의 가슴에 제 가슴을 꼭 마주대면서 술 냄새가 나는 입김으로,

 

"선생님, 저를 한번 안아주세요. 그리고 꼭 한번만 키스를 해주세요. 부인께 대해서는 죄인 줄 알지마는, 저는 기생 생활 몇 달에 아주 열정에 대한 억제를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학생 시대부터 잘 알아요. 정선이 집에 놀러 다닐 때부터 잘 알아요. 제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청해서 한번 키스를 주셨다 하더라도 정선이는-부인은 용서할 것입니다. 음탕한 기생년이라고만 생각지 마세요, 네? 네."

 

하고 두 팔을 숭의 목으로 끌어올려서 몸을 숭의 목에 단다.

 

숭은 여전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숭의 지금 생각에는 아내도 없고 여자도 없었다. 영원한 혼자 몸으로 살여울의 농부가 되는 것밖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산월이가 걱정하는 것과 같이 숭은 산월을 음탕한 기생이라고도, 밉다고도 생각지 아니하였다.

 

도리어 숭은 산월에게서, 정선에게서는 보지 못하던 무슨 깊은 것이 있는 것까지도 생각하였다. 그리고 평생에 어떤 여성에게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숭으로서는, 평생에 접한 유일한 여성인 아내로부터 학대를 받은 숭으로서는 산월의 이 헌신적이요, 열정적인 사랑이 고맙고 기쁘기까지도 하였다. 그러나 숭은 이제 다시 어느 여자에게 장가를 들거나 어느 여자를 사랑할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