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요!"하는 말에 전무 차장뿐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이 다 숭과 그 곁에 따르는 산월을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정선의 시신을 차장실로 올리려는 것을 숭은 전무 차장과 교섭하여 아직 생명이 붙었으니 시신이 아니라는 조건으로 일등 침대 하나를 얻기로 하여 그리로 정선을 옮겨 뉘었다. 개성에서 내린다는 조건이었다.
차는 약 십 분 임시 정거로 그 자리를 떠나서 여전히 달리기 시작했다.
숭은 열차장에게서 응급 구호 재료를 얻어, 우선 강심제를 주사하고 머리와 다리의 피 흐르는 곳을 가제와 붕대로 싸매고, 그리고 산월에게 맡겨놓고는 차실로 나아가 의사는 없는가 하고 물었다. 이등 이상을 탄 사람들은 다들 침대로 들어가고, 남아 있는 사람은 모두 몇이 안되는 중에 의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삼등실에서 의사라고 자칭하는 사람 하나를 만났는데, 그는 의사가 가지는 제구가 없었다.
숭은 의사라는 사람을 데리고 정선의 침실로 왔다.
그 의사라는 사람은 맥을 만져보고 귀로 가슴을 들어보고,
"아직 생명에는 관계가 없습니다."
하고 가버렸다.
차가 개성에 닿은 것은 새로 한시쯤, 숭은 정선을 외과 간호부가 수술받은 환자를 안는 모양으로 안고 내렸다. 뒤에는 산월과 유월이가 따랐다.
정선은 숭의 품에 안겨 남성병원으로 옮기었다. 먼저 전보를 받은 병원에서는 병실, 수술실, 의사, 간호부가 준비되어 정선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선은 우선 수술대 위에 누임이 되어 강심제의 주사와 외과적 치료를 받았다. 가장 중상은 머리와 다리였다. 머리에는 왼쪽 귀로부터 정수리를 향하여 길이 육 센티미터 깊이 골막에 달하는 상처가 있고, 오른편 무릎은 탈구가 되는 동시에 슬개골이 깨어졌고, 그밖에도 어깨와 허리에 피하 일혈이 있고 찰과상이 있었다.
정선이가 치료를 받는 동안, 숭과 산월과 유월은 수술실 문 밖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도무지 정선은 한마디도 소리를 발하지 아니하였다.
정선이가 병실로 옮겨온 뒤에 김 의사는 숭의 묻는 말에 대하여,
"오늘밤을 지내보아야 알겠습니다. 뇌진탕이 되셨으니까."
하고 의사에게 특유한 무신경을 가지고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간호부에게 몇가지 명령을 하고 나갔다.
숭은 따라가서 김 의사를 붙들고 밤 동안을 병원에 있어달라고 청하였다. 그리고 제가 몸소 환자 곁에서 간호하는 허락도 얻었다.
벌써 새로 세시, 정선은 마치 아마 시름없이 자는 사람 모양으로 꼼짝 아니하고 잤다. 이따금 전신이 약간 경련을 일으키기도 한다.
간호부는 한 시간에 한번씩 들어와 맥을 보고 주사를 놓았다.
숭은 침대 곁에 앉아서 줄곧 정선의 맥을 짚고 있었다. 가끔 세기도 하였다. 어떤 때에는 맥이 일흔쯤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일백 이삼십까지 다시 올라오기도 하였다. 몸은 약간 더우나 열이 오르는 모양은 없었다. 맥도 점점 제자리를 잡아서 새벽 다섯시쯤에는 아흔과 백 사이에 있었다.
옆방에 있게 한 산월과 유월도 잠을 못 이루고 한 시간에 두세 번이나 들여다보았다.
숭은 붕대로 감긴 정선의 머리를 바라보며 가끔 눈물을 흘렸다. 이따금 정선의 핏기없는 입술이 말이나 하려는 듯이 전동할 때에는,
"여보, 여보, 내요."
하고 불러보기도 하였다.
이따금 정선의 눈이 뜨일 듯할 때에는 숭은,
"정선이, 여보."
하고 목이 메었다.
그러나 해가 돋도록 정선은 눈을 뜨지 아니하였다.
아침 아홉시, 눈은 개고 유난히 밝은 아침볕이 병실 창으로 비치어 들어왔다. 정선의 창백하던 얼굴은 점점 올라가는 체온으로, 또 점점 회복되는 피로 불그레한 빛을 띠게 된다. 강심제 주사는 그치고 링겔 주사를 하였다. 의사는 삼십팔 도쯤 되는 열은 염려 없다고 숭을 위로하였다.
애초에는, 웬 모자도 없는 사내가 차에 치어 죽어가는 시체를 끌고, 웬 기생 같은 여자를 데리고 온 숭은 결코 이 병원에서 환영받을 손님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입원 수속을 할 때에 환자의 이름은 윤정선, 주소는 경성부 정동, 남편은 허숭, 직업은 변호사라고 쓴 데서 비로소 부랑자가 아닌 줄을 알았고, 또 숭의 행동거지가 점잖은 것을 보고 비로소 의사 이하로 다소 안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웬일이냐, 정선이가 차에 치인 이유를 묻는 이는 없었다.
조선에 이십 몇 년이나 있었다는 아이비 부인이라는 늙은 간호부가 정선의 병실에 들어와서 비로소 정선을 알아보고 깜짝 놀래었다. 아이비 부인이 세브란스 병원에 있을 때에, 정선이가 보통과에 다닐 때부터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개성에 온 뒤에도 정선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아이비 부인은 서울에만 가면, 될 수만 있으면 정선을 찾아보았다. 남편도 없고 자식들은 다 조국인 미국으로 유학 보낸 아이비 부인은 이 병원에서 간호원장으로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