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 저를 모르세요. 산월이랍니다, 백산월이."
하고 말하는 이는 매어달릴 듯이 반갑게 바짝 다가섰다.
이름을 듣고 보니 그는 분명히 산월이었다.
"아!"
하고 숭은 끄덕임과 웃음으로써 인사를 대답하였다.
"어디로 가세요? 아, 용서하세요. 가시는 데를 여쭈어서."
하고 제 말을 취소한다.
"나는 시골로 가요."
하고 숭은 사실대로 대답한 뒤에,
"그런데 어디 가시오"?
하고 이번에 숭이가 물었다.
"네, 저, 잠깐."
하고 사방을 둘러보더니 차중의 시선이 다 제게로 모인 것을 보고 잠깐 당황하다가 곧 안정을 회복해 가지고,
"자리가 어디세요? 잠깐 여쭐 말씀이 있으니 우리 저리로 가세요."
하고 산월은 앞서서 한 걸음 걷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숭이가 따라오는 것을 보고 안심하는 듯이 문을 열고 다음 칸으로 나갔다.
다음 칸은 식당이었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문잡이를 붙들고 선 채, 산월은 아양 부리는 눈으로 숭을 쳐다보고 숭의 조끼 가슴에 한 손을 대고,
"나하고 같이 식당에 가시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시거든 고만두실까. 체면 손상이 되시지"?
"천만에."
하고 숭은 대답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고맙습니다."
하고 산월은 제 손에 잡았던 핸들을 숭에게 사양하고 저는 숭의 뒤에 따라선다.
숭은 이 여자가 왜 여기를 왔으며, 무슨 할 말이 있는가 하고 문을 열고 앞서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산월은 잘두루마기를 벗어서 곁에 빈 교의 위에 놓았다. 두루마기 안은 짙은 자줏빛 하부다이였다. 두루마기 밑에는 연분홍 법단 치마에 남 끝동 자주 고름 단 하얀 저고리를 입은 양은, 마치 신방에서 나오는 신부와 같았다. 게다가 약간 술기운을 띤 불그레한 산월의 얼굴은 참으로 아름다왔다.
"어디를 가시오"?
하고 숭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따라가요."
하고 산월은 문득 기생 어조를 버리고 보통 여자의 태도로 말을 한다.
곁에 와서 명령을 기다리는 보이를 향하여 산월은,
"위스키 앤 소오다."
하고 분명한 영어 액선트로 명령한 뒤에,
"무어 잡수실 거"?
하고 숭을 향한다.
"무어나 잡수시오."
하고 숭은 남의 부인을 대한 모양으로 경어를 쓴다.
"햄 셀러드"?
하고 산월은 숭의 기색을 보다가,
"올라잇! 햄 샐러드!"
하고 보이에게 명하고 고개를 숭의 편으로 돌리려다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움츠리며,
"이건영 박사가 저기 왔어요, 웬 여자 둘 데리고."
하고 영어로 말하고 혀끝을 내민다.
숭은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내 가서 좀 놀려먹고 올까."
하고 산월은 또 기생 어조다.
"이 박사 아시오"?
하고 숭도 호기심으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