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의사가 가려고 일어설 때에 숭이가 돌아왔다. 숭은 사랑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유월이가 다방골서 현 의사가 왔다고 해서 안방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오셨어요"?
하고 숭은 현이 내어미는 손을 잡아 흔들었다.
"그렇게 왔단 말씀도 아니하세요? 전화라도 거시지."
하고 현은 숭의 손을 뿌리쳤다.
"참 미안합니다."
하고 숭도 웃었다. 다들 앉았다.
"그래, 농촌 재미가 어떠세요"?
하고 현은 일부러 좌석을 유쾌하게 하려고 하는 듯이,
"난 도무지 시골 생활을 몰라. 석왕사에 한 이 주일 가본 일이 있나. 제일 불편한 게 전등 없는 게야. 안 그래요"?
하고 말을 시킨다.
"왜 석왕사는 전등이 없소? 있다우."
하고 정선도 기운을 얻어 말대꾸를 한다.
"모두 불편하지요."
하고 숭도 유쾌하게,
"도회에는 편리하도록 편리한 것을 다 만들어 놓았지마는, 농촌에는 아무것도 만들어 놓는 이가 없거든요. 도회 설비 십분의 일만 해 놓아 보세요. 도회에 와 살기보다 나을 테니. 푸른 하늘, 맑은 물, 산, 신선한 풀, 새들, 신선한 공기, 순박한 풍속, 이것이야 농촌 아니면 볼 수 있어요"?
하고 열심으로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직업이 의사니깐 천생 도회에서만 살게 생겼지요"?
"왜 농촌에는 의사가 쓸 데 없나요? 농촌에는 병이 없나요"?
"그야 그렇지요마는 가난한 농민들이 어떻게 의사를 부르겠어요"?
하고 현 의사는 제 주장이 약한 것을 생각하고는 픽 웃는다.
"자동차 타고 불려 다닐 의사는 농촌에서는 쓸 데 없지요. 허지만 제 발로 걸어다닐 의사는 한없이 필요합니다. 내가 처음 살여울을 가니까 살여울 동네에만 이질 환자, 장질부사 환자가 십여 명이나 되겠지요. 그래서 내가 읍내에 가서 의사를 불렀지요. 했더니 자동차비 외에 출장비, 왕진료 하고 사뭇 받아낸단 말씀이야요. 그러고도 오라는 때 오지도 않거든요. 그래서 내가 검온기 하나 사고 또 약품도 좀 사다가 의사겸 간호부 노릇도 했지요…."
"오, 그러시다가 장질부사에 붙들리셨습니다그려? 이를테면 순직이시로군, 하하하하."
하고 현 의사는 말을 가로채어서 웃는다.
"그러니 농민들이 전염이 무엇인지를 압니까, 격리가 무엇인지를 압니까, 소독이 무엇인지를 압니까. 의사들이 무엇하러 도회에만 몰려요? 왜 서울에는 골목골목이 병원이 있는 데도 의사들이 서울에만 있으려 들어요? 왜 만 명에 하나도 의사가 없는 시골에는 안 가려 들어요?
왜 부랑자나 남의 첩이나 이런 사람의 병이면 제 부모 병이나 같이 밤을 새워가며 시탕을 하면서도, 왜 제 밥과 제 옷을 만들어 주고 제 민족의 주인인 농민들이 앓는 곳에는 안 가려 들어요. 현 선생은 왜 불쌍한, 밤낮 쓸데 있는 일에 골몰한 농촌 부녀와 어린애들 병을 좀 안 보아 주시고 대학병원일세, 의전병원일세, 세브란스일세 하고 큰 병원이 수두룩한 데 있어서 한가한 사람들의 병만 보고 계세요? 돈 벌어 보실 양으로?
농촌에 가시더라도 양식과 나무 걱정은 없으시리다. 현 선생이 만일 우리 살여울에 와서 개업을 하신다면 집 한 채, 양식, 나무, 반찬거리 다 드리고, 그리고도 떡 한 집에서는 떡, 닭 잡은 집에서 닭고기, 빠지지 않고 갖다가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농민들에게 어머니와 같은 사랑과 존경을 받으시면서 일생을 보내실 것입니다."
하는 숭의 눈은 열정으로 빛났다.
"어머니 소리 듣기는 싫어."
하고 현 의사는 웃었으나 곧 엄숙한 표정을 지어 숭의 말에 경의를 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