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십분 후에는 현 의사의 청초하고도 싸늘한 자태가 정선과 마주앉아 있었다.

 

"결국 정선의 맘에 달렸지."

 

하고 현 의사는 정선의 하소연을 다 들은 뒤에 하는 말이었다.

 

"정선이가 지난 일을 다 뉘우치고, 앞으로 남편에게 충실하고 순종하는 아내가 될 결심이라면, 허 변호사와 그렇게 하는 것이요, 또 만일 정선이가 도저히 이 가정생활을 계속할 의사가 없다면, 또 그리 하는 것이고-그럴 것 아니야. 잘못은 어차피 네 잘못이니까. 아마 붉은 사랑의 표준으로 보더라도 네 행위는 죄가 되겠지.

 

아무리 생각하더라도 네 행위를 변명할 길은 없을 것이다. 정조라는 문제를 차치한다 하더라도, 신의 문제여든. 정조에는 붉은 정조, 흰 정조가 있을는지 모르지마는, 신의라든가 의리라든가, 하는 문제에 이르러서는 붉고 흰 것이 없으리라는 말이다. 사람이 사회 생활을 하는 동안 아마 영원성을 가진 것이겠지. 그런데 정선이 행위로 말하면 신의를 저버린 행위거든.

 

속이지 못할 사람을 속이고, 하지 못할 일을 한 것이거든. 그러니까 말이야. 정선이 할 일은 우선 남편에게 모든 것을 자백하고 또 사죄하고 다음에는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정선이가 원하는 길, 가정의 계속이냐 파괴냐의 두 길 중에 하나를 택해서 남편에게 청할 것은 청하고 원할 것은 원할 것이란 말야. 그러니깐 지금 네 생각이 어떠냐 말이다. 가정을 계속하느냐 갈라서느냐-그걸 먼첨 작정하란 말이다."

 

하고 현 의사는 정선의 속을 꿰뚫어보려는 듯한 파는 눈으로 정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선의 초췌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얼굴이 가엾었다. 역시 혼인이란 어려운 것인가 하고 현은 제 몸이 단출하고 가벼움을 느꼈다.

 

"내가 어떡하면 좋수"?

 

하고 정선은 그만 울고 엎드렸다.

 

남편의 앞에서 갑진과의 관계를 자백하는 것, 그 다음에 올 남편의 말, 그 다음에 올 제 앞길, 모두 캄캄하였다. 갑진과 둘이서 오류장으로 가던 그 용기는 어디서 나왔던 것인고, 정선은 제 일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현은 우는 정선을 물끄러미 보고만 앉았다. 침묵 중에 시계 바늘은 돌아갔다.

 

"우는 것으로 해결이 되나."

 

하고 현 의사는 정선의 어깨를 만지며,

 

"이제는 여자도 우는 것을 버릴 때가 아닌가. 우는 것은 약자의 무기다.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것은 뜨거운 감정이 아니거든. 찬 이지란 말이다. 맘을 식혀, 싸늘하게 얼음같이 식혀요. 그래야 바른 생각이 나오거든. 원래 네가 맘을 식혔더면야 이런 일이 나지를 아니했을 것이다. 열정이 너를 그르쳤구나….

 

정선이, 무슨 엔진이든지 말이다, 다 냉각 장치가 있단 말야, 식히는 장치가 있어. 엔진이 돌기는 열로 돌지마는 식히지를 아니하면 아주 돌지 못하게 터지거나 병이 나고 말거든. 그래서 자동차든지, 비행기든지 다 냉각 장치가 있단말야-공기로 식히는 것도 있고 물로 식히는 것도 있지 아니하냐. 그 모양으로 열정가의 열정에도 냉각 장치가 필요하단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냉각을 시켜야 될 때라고 생각되거든 즉시 냉각시킬 수 있도록, 썩 기민하고 정확하게 작용이 되도록 조절해 놓을 필요가 있어. 그럼 그 열정의 냉각 장치는 무에냐 하면 그거는 이지란 말이다. 인텔리젠트란 말이다. 정선이도 인텔리젠트하기는 하지마는 아직 이모우션(정)과 인텔리젠트가 잘 조화, 연락이 되지 못했단 말야. 하니깐 말이다, 잘 머리를 식혀가지고 생각을 해보란 말이다."

 

정선의 혼란한 의식 속에는 현 의사의 말이 분명히 다 들어오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제 행동이 인텔리젠트하지 못한 것만은 의식하였다. 그것을 의식할 때에 정선은 한 가지 더 낙망을 느끼었다. 정선은 스스로 약은 사람으로 믿고 있었는데 제 약음이란 것이 몇 푼어치 아니되는 것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이만한 어려운 경우를 당하면 곧 파산이 되는, 제 지혜라는 것이 가엾은 것이라 하였다.

 

이렇게 저를 평가할수록 아무러한 일에도 도무지 업셋〔쩔쩔매는 것〕하지 아니하는 남편의 지력과 의지력이 가치가 높고 무서운 것 같이 보였다. 현 의사는 싸늘한 지혜의 사람만 되지만 남편에게는 싸늘한 지혜 외에도 굳은 의지의 힘과 불 같은 열정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정선이가 남편의 인격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보기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것은 현 의사의 도움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내가 혼자 살아갈 수는 없겠수"?

 

하고 정선은 제게 힘이 없음을 느끼면서 물었다.

 

"혼자? 이혼하고"?

 

하고 현은 반문한다.

 

"이를테면 말이우."

 

"혼자 살아갈 수 있겠지. 정선이는 재산이 있으니까. 재산만 있으면 살기는 사는 게지. 먹고 입으면 사는 것이니까."

 

"교사 노릇이라도 못할까"?

 

"그건 안될 걸. 간음하고 이혼당한 사람을 누가 선생으로 쓸라고."

 

하고 현 의사는 사정없이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