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은 남편이 말문을 열어 주기를 고대하였다. 남편은 반드시 말문을 열어서 이 무겁고 괴로운 침묵을 깨뜨리고 저를 위로해 주는 말을 하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맛도 없는 밥을 퍼 넣고 있었다. 그러나 숭의 입에서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아니할 뿐더러 눈도 오직 밥 그릇과 반찬 그릇에서 돌 뿐이요, 한번도 정선에게로 향하지 아니하였다.

 

정선은 혹은 곁눈으로, 혹은 치뜨는 눈으로 남편의 태도를 엿보았으나 그는 마치 바윗돌같이 태연하여 얼굴에는 아무 표정의 움직임도 없었다. 이따금 숭이가 밥술을 든 채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슨 괴로운 생각을 보임인가 하였다.

 

이 모양으로 저녁도 끝이 났다. 상도 물리기 전에 숭은 사랑으로 나와버렸다. 숭이 나간 뒤에 정선은 누를 수 없는 슬픔이 북받쳐서 책상 위에 엎드려 울었다.

 

정선은 현 의사의 충고대로 남편에게 제 모든 잘못을 뉘우치고 그 용서함을 빌고 싶었다. 그리고 만일 남편이 허하기만 한다면 그를 따라서 어디까지라도 가고 싶었다. 살여울 가서 오라 같은 굵은 베치마를 입고 물을 긷고 밥을 지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밥을 먹는 동안에는 정선은 그 기회를 찾지 못하였다.

 

"한없는 남편의 사랑"을 정선은 숭에게 기대하였다. 또 저는 남편에게 그만한 것을 기대할 권리가 있는 것같이 생각하였다. 거기는 숭이가 정선의 친정집 밥으로 공부를 한 것, 제가 십여 만원의 재산을 가지고 온 것 등을 믿는 마음이 섞인 것이었다.

 

정선은 이제나 남편이 들어오는가 저제나 들어오는가 하고 기다렸다. 마당에서 무슨 소리가 나도 그것이 남편의 발자취나 아닌가 하였다. 마치 애인을 기다리는 처녀의 마음만 같았다. 만일 지금 남편이 들어오기만 하면 울고 매어 달리려고까지 생각하였다.

 

그러나 시계가 아홉 시를 가리켜도 남편은 들어오지를 아니하였다. 정선은 초조하여 유월이를 불러 남편이 사랑에 있나 없나 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고 오라고 하였다.

 

유월이의 보고에 의하건댄 남편은 사랑에서 짐을 싸더라고 한다.

 

그러면 남편은 살여울로 가려는 것인가. 저를 아주 버리고 살여울로 가려는 것인가 하였다.

 

정선은 일어나 사랑으로 나갔다. 일부러 발자국 소리를 내면서 마루에 올라서서 문 밖에서 잠깐 기다렸다. 방안은 고요하였다.

 

정선은 서양식으로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그리고 또 기다렸다.

 

십 초나 지냈을 만한 때에 숭은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무심한 눈으로 정선을 바라보고 들어오라는 보통 인사로 하는 듯이 몸을 한 편으로 비키고 섰다.

 

정선은 만나는 길로 남편에게 안기려 하였으나 남편의 이 무심한 태도를 보고는 그 용기도 다 없어졌다. 방안에 가로 놓인 가방들을 보고는 도리어 일종의 반감까지 일어났다.

 

정선은 가방을 둘러보면서,

 

"어디 가시우"?

 

하고 남편에게 말을 붙였다.

 

"살여울로 가오."

 

하는 것이 숭의 대답이었다.

 

"가시려거든 결말을 내고 가시우."

 

하고 정선은 떨리는 분개한 음성으로 톡 쏘았다. 정선이가 결말을 내고 가라고 대드는 바람에 숭은 잠깐 대답을 잃은 듯, 정선의 눈에서 말 밖의 뜻을 찾으려 하였다.

 

정선의 눈은 독기를 품고 입술은 떨었다. 그는 남편의 무한한 사랑을 믿던 반동으로 남편이 저를 버리고 달아나려는 것에 무한한 분개를 느낀 것이었다.

 

"결말"?

 

하고 숭은 정선의 마음에 대한 정탐이 끝이 났다는 듯이 다시 태연한 어조로 말을 하였다.

 

"그럼. 결말을 내야지. 흐지부지하고 가실 듯 싶소"?

 

하고 정선은 방바닥에 모으로 세워 놓은 슈트케이스를 발로 차서 굴리고 해볼 테면 해보자 하는 모양으로 아랫목에 펄썩 주저앉았다. 분한 정선의 생각에는 이것도 다 내집인데 하는 생각이 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