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이 다 나지 않았소? 결말이 다 났으니까, 나는 나 갈 데로 가는 것이요. 아직 결말 아니 난 것은 여기 있소."
하고 숭은 양복 저고리 속주머니에서 봉투에 넣은 서류 한 장을 꺼내어,
"여기는 당신과 나와의 이혼 수속이 들어 있고, 내 도장은 박아 놓았으니 언제나 당신이 하고 싶은 때에 당신 이름 밑에 도장을 찍고 당신 아버지 도장을 찍어서 경성부에 제출을 하시오그려. 그리고 내 이름으로 장인께서 주신 재산은 전부 장인 이름으로 양도한다는 공정증서를 작성해서 아까 갖다가 드렸소. 이만하면 결말이 다 나지 않았소? 그 밖에 무슨 결말 안 난 것이 있단 말이요? 응 그리구 이 집도 역시 당신 아버지께로 넘긴다고 공정증서 속에 집어 넣었소."
하고 쇳대 끈에서 금고 열쇠를 뽑아서 정선의 앞에 내어 던진다.
정선은 숭의 대답에 정신을 잃을 뻔하였다. 숭이가 낮에 밖에 나갔다 들어온 것이 모두 이러한 수속 때문이었던가. 남편은 아주 저를 끊어버릴 결심을 다 하였는가 하매 전신이 매어달렸던 줄에서 탁 끊어진 것 같아서, 그 서슬에 제 몸은 바윗돌에 탁 부딪친 것 같아서 정신이 희미해짐을 깨달았다.
"나는 살여울서 벌써 당신과 갑진과의 관계를 알았소."
하고 숭은 정선을 향하고 마주 앉아 얼마큼 태도를 부드럽게 풀며,
"어느 친구가 내게 편지를 해 주었소. 나는 그 편지를 아니 믿으려 했지마는, 그래도 맘이 괴로와서 예정보다 일찍 서울로 올라왔소. 내가 하루만 더 일찍 올라왔더라면 우리 불행은 좀 덜했을는지 모를 것을. 아마 운명인가 보오.
나는 황주에서 집으로 당신에게 전보를 놓고 당신이 정거장에 나올 것을 기다렸으나, 물론 그때 내가 경성역에 내릴 때에는 당신은 갑진군과 어느 요릿집에서 저녁을 막 마쳤을 때이었을 것이요. 그러니까 내 전보가 집에 올 때에는 당신은 갑진군과 함께 훈련원 운동장에서 베이스볼 구경을 하고 있었을 것이요.
나는 차에서 내려서 혼자 나오다가 당신이 갑진이와 함께 택시를 타고 오류장을 향하고 달려 가는 것을 보았소. 그리고 나는 집에 온 이튿날인가 갑진군이 당신에게 한 편지를 받아 보았소. 그 편지로 나는 당신이 오류장 갔던 목적을 알았소.
그리고 오늘까지 나는 당신이 내게 무슨 말을 하는가 하고 기다렸고, 또 나를 찾아서 살여울 간 뜻도 추측은 하지마는 당신의 입으로 말을 들어볼까 하였소. 나는 당신이 비록 일시의 잘못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반드시 내 앞에서 뉘우치는 말을 할 것을 믿고 기다렸소.
그러나 내가 믿었던 것은 다 허사요. 나는 오늘에 이르러서 모든 일은 다 끝난 것을 깨달았소.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로 당신의 말과 같이 우리 부부 생활에 결말을 짓고 밤차로 내 일터로 가는 일밖에 남은 것이 무엇이요"?
하고 정선의 흙빛 얼굴을 바라보았다.
숭은 짐을 싸면서도 최후의 일각까지 정선의 반성을 기다린 것이었다. 그러다가 정선이가 사랑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지금이라도" 하고 정선의 자백과 회오를 예기하였던 것이, 정선이가 도리어 토라진 모양으로 보이는 것을 보고는 최후의 희망조차 끊어지고 만 것이다.
"아버지한테 내 말을 다 하셨소, 그래"?
하고 정선은 숭에게 대들었다.
"……"
"아버지 보고 무어라고 하셨소"?
하고 정선은 잼처 물었다. 정선의 마음에는 제 비밀을 아버지에게 옮긴 것에 대한 분한 마음이 가득 찼고 또 숭의 말〔정선의 죄상을 낱낱이 적발한〕에서 받은 수치심이 회오리 눈물로 변하는 대신에 분노와 원망의 불길로 변한 것이었다.
숭은 정선의 이 반응을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그것은 숭의 마음에서 정선에게 대한 최후의 동정과 미련까지도 싹 씻어버렸다. 그 불쾌함은 정선을 갑진의 집에서 발견한 때 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