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거. 나는 예수나 믿어 볼까. 목사가 되어 볼까"
하고 갑진은 예배당을 눈에 그렸다.
"찬송합시다, 찬송합시다 아아, 내 죄를 씻으신 주 이름 찬송합시다"
그것도 남을 시켜서 부르게 하고 듣는 것은 괜찮지마는 제가 부르는 것은-그 어리석은 무리들과 섞여져 부르는 것은 쑥스러웠다. 갑진은 원체 창가를 잘 못하였고 또 음악은 싫었다.
"이놈아, 그 삐, 빼하는 것을 직업이라고 해."
하고 그는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친구를 놀려먹었다. 갑진에게는 가장 가치 있는 학문은 법학이요, 가장 가치 있는 직업은 관리-그 중에도 사법관이었다. 그 중에도 검사였다. 그 밖에는 대학 교수와 변호사만이 제 체면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었다. 같은 대학 교수라도 사립 말고, 조선에 있는 것 말고, 동경 제국대학 교수였다.
이렇게 도도한 갑진이가 예배당에 가서 어중이떠중이와 함께 찬미를 부르고 고개를 숙여 기도를 하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었다.
갑진은 물론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아니한다. 그는 유물론자인 것이다. 하물며 유태인이 생각하는 하나님인 여호와라는 것은 한 신화 중의 픽션에 불과하였다. 예수는 갑진에게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갑진은 예수 모양으로 밥을 굶고 발을 벗고 돌팔매를 맞고 돌아다니다가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매달려서 옆구리를 찔려 죽고 싶지는 아니하였다. 편안히 살면서, 오래 살면서, 정말 면류관을 쓰면서 예수가 되려면 그것은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갑진은 돈 많고 아름다운 아내와 고등문관 시험 합격을 노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마는 하나님이 있고 없고, 예수가 하나님의 외아들임을 믿고 아니 믿는 것은 예수를 믿는 데 별로 큰 지장이 없었다. 일요일마다 예배당에를 가고 남과 같이 찬미를 부르고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갑진은 일년 내에 능히 주일학교 성경 선생, 장로까지는 올라가리라고 생각한다.
"거 할 만하지마는 뭐 먹을 것이 있다구"
하고 갑진은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들이마셨다가 입을 여러 모양을 지으며 내어 뿜었다.
"무얼 해"?
하고 갑진은 정말 체조 모양으로 두 팔을 홰홰 내두르다가 책상 앞에 와서 끓어앉으며,
"그렇다고 밤낮 이 모양으로 살다가는 전정이 젬병이구"
하고 눈을 껌벅껌벅하며 생각을 계속한다.
"제길, 나도 금광이나 나설까"
하고 최창학이 방응모를 생각한다.
"나도 최창학이, 방응모 모양으로 금광만 한번 뜨면 백만 원, 이백만 원이 담박에 굴러 들어올 텐데. 오, 또 박 용운이란 사람도 백만 원 부자가 되었다고. 내가 하면야 그깟놈들만큼만 해. 그래서는 그 돈은 떡 식산은행, 조선은행, 제일은행… 일본은행에다가 예금을 해 놓고는. 옳지, 요새 경제 봉쇄니, 만주 전쟁이니 하는 판에 그 백만 원, 아니 이백만 원을 가지고 한번 크게 투기사업을 해서 열 갑절만 만들어-일년 내에. 그러면 이천만 원. 아유, 이천만 원이 생기면 굉장하겠네."
하고 갑진은 바로 눈 앞에 이천만 원의 현금이 놓이기나 한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본다.
"이천만 원만 가지면야 무엇을 못 해. 제길 한번 정치 운동을 해 볼까. 정우회 민정당을 온통으로 손에 넣어서…그보다도 조선의 토지를 살까. 아유, 그 이천만 원만 있으면야. 아유 그걸 어떻게 다 써. 한번 서울 안에 있는 기생을 모조리 불러 놓고-아차 또 이런 비루한 생각. 인왕산 밑 윤 자작의 집을 사 가지고, 어여쁜 여학생 첩을 스물만 얻어서…"
갑진은 이천만 원이라는 생각에 일시적으로 과대망상광이 된 모양으로 이 생각 저 생각하고 있을 때에, 점심 상이 나와서, 갑진의 공상의 사슬을 끊었다. 그러나 이천만 원 덕분에 정선이 문제로 생겼던 괴로움은 훨씬 가벼워졌다.
"요오시〔오냐라는 일본말〕. 금광을 해보자. 그것도 자본이 드나"?
하고 금광을 해보리라는 생각은 깊이 갑진의 마음에 뿌리를 박았다.
그러나 금광에는 자본이 안 드는가. 새 것을 찾으려면 고생이 안되는가. 누가 찾아놓은 것을 하나 얻었으면 좋으련마는, 좋은 것을 왜 내어 놓으려고? 이렇게 생각하면 금광도 쉬운 것 같지는 아니하였다.
"에이, 귀찮아!"
하고 갑진은 담배 한 대를 또 피워문다. 담배를 피워무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었다.
밥상을 물린 뒤에도 다시 생각을 계속하였으나 신통한 결론이 없었다. 그는,
"에라, 금년 고문이나 꼭 패스하자"
하고 책상에서 작년에 부족하였던 형법총론을 꺼내 놓았다.
"우선 검사가 되어 가지고…그래 그래, 검사가 제일이다"
하고 책을 떠들쳐 보았다. 그러나 반년 이상이나 돌아보지 않던 책이라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아니하였다.
"역시 부잣집 딸한테 장가드는 것이 제일 속한 길이다!"
하고 책을 내동댕이를 쳤다.
"그러나 인제는 신용도 다 잃어버리지를 아니하였나. 그나 그뿐인가, 숭이놈이 그 편지를 불살라 버리지 아니하고 두었다 하면 언제 그것을 내대고 간통 고소를 할는지 아나. 글쎄, 내가 미쳤지, 그 편지를 왜 해"?
하고 갑진은 이를 갈았다.
"어디 술 먹으러나 갈까"?
하고 갑진은 시계를 꺼내 보았다. 아직 오후 세시다.
"아직 카페도 안 열었겠고"
하고 갑진은 대단히 불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