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는 동안에 정선은 깨어났다.
정선은 눈을 떠서 휘 한번 둘러보고는 벌떡 일어나서 두 손으로 낯을 가리고 벽을 향하고 돌아앉아서 울었다. 정선의 옷은 젖고 꾸겨지고 머리는 한바탕 끄들린 사람 모양으로 헙수룩하게 되었다.
"난 죽는 줄 알았구려."
하고 갑진이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갑진은 이번 통에 그만 모든 흥이 깨어지고 말았다. 여자라는 것이 적어도 정선이란 여성 하나만은 그만 무서워지고 말았다. 그래서 갑진은,
"자동차 불러 줄께 타고 가구려."
하고 차게 정선에게 말하였다. 그리고는,
"내가 나가야 전화를 걸지."
하고 베드로우브 위에다가 외투를 입고 뛰어 나갔다.
이때에 숭은 밖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아마 제가 파출소 앞까지 간 새에 정선이가 가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돌아서려다가 그래도 단념이 아니 되어서 갑진의 집 대문까지 걸어왔던 때라 뛰어 나오는 갑진과 딱 마주쳤다.
"앗!"
하고 갑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다가,
"자네 여태껏 여기 있었나"?
하고 잠깐 머뭇머뭇하다가,
"정선씨가 내 집에를 오셨다가 잠깐 기색을 했어. 그래 지금은 피어났네. 난 죽는 줄 알았는걸. 내가 오라고 청한 것도 아닌데, 이를테면 나한테 좀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왔다가 자네가 온 것을 보고 아마 기색을 한 모양이야. 아니, 참 자네 간 뒤에 왔던가, 원. 아무려나 살아났으니 다행인데, 내가 지금 자동차를 부르러 가니 자네 들어가 보게. 마침 자네가 잘 왔으니 자동차 타고 집으로 같이 가지."
하고는,
"경칠, 어느 놈의 집 전화를 빌려"?
하고 껑충껑충 뛰어나간다.
갑진이가 껑충껑충 뛰어서 모퉁이를 돌아서는 양을 보고 숭은 누를 수 없는 불쾌와 분노를 깨달았다.
"그러면 그것은 정말 정선이던가. 정선이가 무엇하러 갑진의 집을 찾아왔으며, 내가 오는 것을 보고 숨었으며 또 기색은 왜 하였는가"
그러나 숭은 "억제하는 힘"이라고 생각하였다. 숭은 태연하기를 힘썼다. 이 경우에도 제가 들어가서 정선을 데리고 가는 것이 정선의 체면을 조금이라도 보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숭은 용기를 내어서 사랑으로 들어갔다.
사랑 마루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가 숭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모두 눈을 크게 떴다. 숭은 머리와 등에 얼음물을 끼얹는 듯함을 깨달았지마는 태연하게 쌍창을 열어젖혔다. 정선이가 혼자 우두커니 벽에 기대어 앉았다가 숭을 보고 두 손으로 낯을 가리었다.
"괜찮으니 다행이오."
하고 숭은 한마디를 던지고 다시 문을 닫아버렸다.
마루 끝에 섰던 사람들은 숭이가 온 것을 보고 다 나가버리고 말았다.
숭은 다시 쌍창을 열었다. 정선은 방바닥에 엎드려 어깨를 움직이며 울고 있었다.
밖에서 자동차의 사이렌이 들린다.
"자동차 왔소, 나오시오."
하는 숭의 말은 부드러웠으나 떨렸다.
정선은 몸을 들어 눈물을 씻고, 코를 풀고, 머리를 만지고, 손가방을 찾아 들고, 목도리를 찾아 들고 일어나 나왔다. 그는 구두끈을 매는 동안에도 땅만 들여다보고 구두를 신고 일어서서도 감히 숭을 우러러보지 못하였다.
숭은 정선을 한번 힐끗 보고는 앞을 서서 대문으로 나왔다. 뒤에서 정선이가 따라 나오는 구두 소리를 들으면서 걸었다.
자동차가 섰는 큰 길 모퉁이를 돌아서려 할 적에 갑진을 만났다.
"괜찮소"?
하고 갑진은 정선과 숭을 일시에 바라보았다. 정선의 눈물에 젖은 해쓱한 얼굴과 숭의 화석한 듯한 엄숙한 얼굴이 다 갑진에게는 차마 볼 수 없는 괴로운 것이었다.
"아, 내가 잘못했다"
하고 갑진은 평생에 몇번 아니해본 후회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