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은 지금 제가 저지르고 있는 죄만 사라지고 나타나지 아니할 양이면 아무렇게 하여도 좋을 것 같았다. 만일 제 비밀이 숭에게 탄로가 되어서 숭이 그것을 듣고 아는 날이면 정선의 일생은 망쳐지는 것이 아니냐. 아버지에게도 버림을 받을 것이요, 세상에서도 버림을 받을 것이다.

 

정선은 신 마리아라는 여자의 일생을 생각한다. 그는 늙은 남편의 아내가 되었다가 젊은 남자와 예배당 찬양대에서 서로 사랑하게 되어서 마침내 그 남자의 씨를 배고 간통죄로 남편의 고소를 당하여 육 개월 징역을 지고 나와서는 그 친정에서까지 쫓겨나와서 카페에 여급으로 다니는 것을 생각한다.

 

제 일생도 그와 같지 아니할까. 그것은 전혀 숭에게 달린 것이다. 정선은 숭의 인격을 믿는다. 만일 제가 회개만 하면 숭은 아마도 저를 용서하고, 제 허물을 다 감추어 주고, 아내로 사랑해 줄 것을 믿는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숭을 무서워한다. 그것은 숭에게는 무서운 의지력이 있고 고구려 사람다운 무기가 있어서 한번 작정하면 물과 불을 가리지 아니하는 한 방면이 있는 것이다. 만일 숭이 실행한 아내인 제게 대하여 이 고구려 기운을 내는 날이면 저를 간통죄로 고소하기 전에 단박에 죽여 버릴는지도 모른다. 정선은 그것이 제일 무서웠다.

 

이해 관계를 따지면 정선은 아무리 하여서라도 숭에게 갑진과의 관계의 비밀을 알리지 아니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러나 이 비밀을 남편이 알았는지 못 알았는지, 그것을 알 도리가 없었다. 만일 숭이 그 비밀을 알았다 하면 아무쪼록 제 태도를 부드럽게 해서 숭의 사랑과 인격에 하소연할 길밖에 없었다.

 

그래서 남편과 같이 집에 돌아온 뒤에도 어떻게 하면 그 눈치를 알아낼까 하고 그것만 애를 썼다.

 

숭은 집에 돌아온 뒤로는 도무지 정선에게 대해서 아무 말이 없었다. 살여울로 가겠느냔 말도 묻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고등법원에 제출할 상고 이유서를 쓴다 하고 사랑에 틀어박히어서 나오지 아니하고 자리도 사랑에 깔게 하였다. 그리고 마치 정선에게 무슨 소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이 정선에게는 보였다.

 

이래서 초조한 정선은 혹시나 갑진이가 찾아오지나 아니 할까, 무슨 편지나 와서 숭의 눈에 띄지 아니할까, 잠시도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여서, 어떻게 틈을 내어서 갑진을 한번 만났으면 하고 애를 썼다. 그것은 보고 싶어 만나자는 것이 아니라 이 비밀이 탄로되지 않도록 대책을 의논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선은 아무리 갑진과 서로 만날 기회를 엿보나 기회는 만만치 아니하였다. 그렇다고 갑진에게 편지를 보내어 갑진에게 필적을 남겨 놓을 용기도 없었다. 전화가 오면 혹시 갑진에게서 오나, 편지가 오면 혹시 갑진에게서 오나 정선은 마음을 죄었다.

 

숭이 재판소에 가던 날 정선은 이것이 최후의 기회라고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서 길에서 호로 씌운 인력거 한 채를 집어 타고 재동 김 남작 댁을 찾아갔다. 번지도 모르고 김 남작을 찾으나 아는 이가 없었다. 김갑진을 찾아도 아는 이가 없었다. 잿골이라고 부르지만 정말 재동인지 가회동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정선은 마침내 인력거를 보내고 걸어서 이집저집 문패를 뒤지기 시작하였다. 그 꼴이 심히 창피하였으나 그것을 가릴 여유가 없다. 아무리 하여서라도 갑진을 만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정선은 마침내 파출소에 가서 김갑진의 주소를 물을 용기까지 내었다. 순사는 어떤 젊은 미인이 이 유명한 부랑자를 찾는가 하고 번지 적은 책을 뒤지면서,

 

"그 사람은 왜 찾으시오"?

 

하고 심술궂게 물었다. 정선은 얼김에,

 

"친척이야요."

 

하고 대답하고 낯을 붉혔다.

 

"친척? 친척인데 동네 이름도 몰라요"?

 

하고 흥미를 가지고 묻는다.

 

"시골서 와서 잿골이라고만 압니다."

 

하고 정선은 거짓말을 하였다.

 

"김갑진이란 사람은 ○동 ○○번지요. 이 사람 집에는 웬 이리 번지도 모르는 젊은 여자, 친척이 많담."

 

하고 순사는 책을 덮어 놓으면서 정선을 한번 더 훑어본다.

 

정선은 얼굴에 모닥불을 끼얹는 듯함을 깨달으면서,

 

"고맙습니다."

 

한마디를 던지고 파출소에서 나와서 순사가 지시한 번지를 찾았다.

 

그것은 남작 대감의 아들이 사는 집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이 초라한 집이었다. 그래도 양반집이라 대문 중문은 분명하고, 또 사랑 중문이라고 할 만한 문도 형적만은 있었다.

 

대문 안에를 두리번거리니 행랑에서 어떤 어멈이 아이를 안고 문을 열고 내다본다.

 

"김갑진씨 계시오"?

 

하고 아무쪼록 태연한 모양을 지으며 물었다.

 

"네, 사랑 서방님요"?

 

하고 어멈은 서양식 헌 문을 사다가 달아 놓은 문을 가리켰다.

 

"손님 아니 오셨소"?

 

하고 정선은 주밀하게 물었다.

 

"안 오셨나 본데요. 감기로 편찮아 누우셨나 보던데요. 들어가 보세요. 여자 손님들도 노상 오시는걸요."

 

하고는 한번 더 이상한 손님을 훑어보고는 문을 닫고 우는 애를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