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여울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오. 그 사람들은 다 제 손으로 벌어서, 제 땀으로 벌어서 밥을 먹고 밤낮에 생각하는 일도 어떻게 하면 쌀을 많이 지을까, 어떻게 하면 거름을 많이 만들까, 어떻게 하면 가마를 많이 짜서 어린것들 설빔을 해 줄까, 집에 먹이는 소가 밤에 춥지나 아니한가, 아침에는 콩을 좀 많이 두어서 맛나게 죽을 쑤어 먹여야겠다. 이런 생각들만 하고 있다오.
서울 사람들 모양으로 어떻게 하면 힘 안 들이고 돈을 많이 얻을까, 어떻게 하면 저 계집을 내 것을 만들까, 저 사내를 내 것을 만들까, 이런 생각은 할 새가 없지요. 나는 살여울이 그립소. 당신은 어떻소? 당신은 살여울 가서 정직하게 부지런하게 검박하게 땀 흘리고 남을 위하는 생활을 할 생각이 아니 나오"?
하고 숭은 정선을 바라보고 한숨을 지었다.
"내가 살여울 가서 무엇을 하겠어요? 나같은 것이 거기 가서 무어 할 게 있나요"?
하고 정선도 한숨을 쉬었다.
"왜 할 게 없어?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김도 매고, 그리고 또 틈이 있으면 동네 부인들과 아이들 글도 가르치고. 또 당신 음악 알지 않소? 동네 사람들 음악도 들려주고…왜 할 게 많아서 걱정이지, 할 게 없어? 서울서야말로 할 게 없소. 서울서 무얼 한단 말요? 당신 학교 졸업하고 나서 무엇 한 것 있소?
당신만 아니지. 공연히 농민들이 애써 지은 밥 먹고 여직공들이 애써 짠 옷 입고, 그리고 사람들 많이 부리고, 그리고는 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요? 서울에 있겠거든 무슨 좋은 일을 하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저 먹는 밥, 저 입는 옷이라도 제 손으로 지어 입는 것이 옳지 않소. 적어도 남의 신세는 아니 진단 말요. 남의 노동의 열매를 도적질을 아니한단 말이요. 이건영이니, 김갑진이니 하는 사람들이 다 호미 자루를 들고 농사만 짓게 되더라도 죄악은 훨씬 줄고 농민 노동자의 고생도 훨씬 덜어질 것이오. 안 그렇소"?
하고 숭은 책망하는 듯한 눈으로 정선을 보았다.
"걱정 마세요."
하고 정선은 양미간을 한번 찡그리면서,
"아무러기로 내가 당신 것 얻어먹지는 아니할 사람이니 염려 마세요. 나는 죽으면 죽었지 밥 짓고 빨래하고 김매고 그런 일은 못해요. 우리 조상은 오백 년 래로 그런 천한 일은 해 본 적이 없어요. 당신네 집과는 달라요."
하고 견딜 수 없는 모욕을 당하는 듯이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 손에 들었던 빵을 접시에 내어던졌다.
숭도 정선의 이 의외의 반응에 일변 놀라고 일변 분개하였다. 그래서 참으리라는 의지력이 발할 새 없이,
"당신 집에서는 조상 적부터 김 매고, 밥 짓는 천한 일은 한 적이 없고, 남편을 배반하고 남편을 복종하지 아니하는 일은 한 적이 있소? 당신이 하는 일이 천한 일인지, 내가 당신더러 하라는 일이 천한 일인지 당신의 재주와 교양으로 한번 판단해 보시오!"
하고 주먹으로 식탁을 쳤다. 식탁 위에 놓인 그릇들이 떨그덕 하고 소리를 내고 떨었다.
숭의 이 말은 정선의 가슴에다가 큰 말뚝을 박는 것과 같았다. 정선은 잠시 숨이 막히고 눈이 아뜩하였다.
"그러면 내 남편은 내 비밀을 아나"?
하는 한 생각이 정선의 신경을 마비해 버리고 말았다.
식탁을 치는 소리에 보이가 뛰어와서 왜 부르는가 하고 명령을 기다렸다.
"커피로 말고 홍차로."
하고 시키고 남은 빵에다가 버터를 득득 발랐다.
"여자에게는 영혼이 없다. 여자에게는 이성이 없다"
하는 옛 사람의 말을 숭은 생각하였다. 정선의 추리 작용의 움직임이 어떻게 비논리적이요, 도덕 관념의 연합되는 양이 어떻게 그릇되어 있고 감정의 움직임이 어떻게도 열등임에 숭은 놀라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더불어 이치를 말할 수 없다"
하는 반감까지도 일어나서 숭은 대단한 불쾌를 느꼈다.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햄언엑즈의 달걀 후라이를 포크로 찍어서 입에 넣은 정선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지는 것이 숭의 눈에 보였다.
정선의 눈물은 숭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숭에겐 정선이 대단히 사랑스러웠다. 첫째, 정선은 아름다왔다. 그의 얼굴, 그의 눈, 코, 입, 귀, 살갗, 몸 맵시, 음성, 어느 것이나 하나도 숭의 마음에 들지 아니하는 것이 없었다. 정선의 손이 백랍으로 빚어놓은 것 같고 그 손톱들이 연분홍 빛으로 맑게 빛나는 것도 아름다웠다.
원체로 말하면 숭은 이러한 손을 미워해야 옳을 것이다. 그것은 이러한 손은 놀고 먹는 계급의 손인 까닭이다. 그야말로 오백 년 놀고 먹은 씨가 아니고는 이러한 손은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 손은 거문고 줄을 고른다든가 피아노의 건반이나 누르기에 합당하고, 바늘을 잡기에는 맞지 아니할 것 같았다. 만일 그 손이 한 해 겨울만 진 일을 한다고 하면, 한 해 여름만 김을 맨다고 하면, 그 아름다움은 영영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숭에게는 정선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괴로왔다. 그의 마음도 몸모양으로 아름다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였다.
"이 앞에는 어떻게 할 테요? 살여울로 날 따라 가려오? 서울 있으려오"?
하고 숭은 화두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