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뜬 때에는 아직 방은 캄캄하고(그것은 겹창을 굳게 닫은 탓이었다) 전기난로의 마찰음이 들릴 뿐이었다. 유월이가 새벽에 들어와서 피워 놓은 것이다. 방은 마치 이른 여름과 같이 유쾌하리만큼 온화한 기후다. 이 공기를 뉘라서 대소한 서품의 아침 공기라 하랴.
숭은 베개 밑을 손으로 더듬어 전기등 스위치를 꼭 눌렀다. 그것은 조그마한 가지모양으로 생긴 것으로 하얀 뼈 꼭지가 달린 것이다. 불이 꺼졌을 때에 그 꼭지를 누르면 켜지고 켜졌을 때에 그 꼭지를 누르면 꺼지는 것으로 길단 코드라는 줄에 매어 베개 밑에 넣고 자면서 자유자재로 등을 켰다 껐다 하게 생긴 매우 편리한 기계다.
"이것을 조선 집집에 맨다면"
하고 숭은 그 황송스럽게도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스위치로 불을 켜고 나서도 손에 든 채로 한탄하였다.
책상에 놓인 푸른 옥시계의 바늘은 여덟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밖에는 해도 떴을 것이다. 혹은 바람이 불고 눈이 올 것이다. 그러나 겹겹이 닫은 이 방안에는 그러한 불필요한 바깥 소식은 아니 들린다. 만일 필요한 소식이 있다고 하면 문 열지 아니하고도 찬바람 들이지 아니하고도 통할 수 있는 전화로 올 것이다. 일어날 필요도 없는 이 살림, 가만히 누워 있다가, 버둥거리다가 또는 희롱하다가 하도 그것이 지루하면 일어나는 것이다.
네 벽에 늘인 모본단 방장. 그 모본단은 결코 인조는 아니다. 대부분이 진짜 비단실로 된 교각이다. 이것은 다 혼인 예물들이다.
숭이 만일 전등 스위치 곁에 놓인 초인종을 꼭 한번 누른다 하면 유월이가 세숫물과 빵과 과일과 우유를 들고 뛰어올 것이다. 이것은 숭이 신가정을 이룬 뒤로부터 습관이 된 아침밥이다.
숭이가 세수를 끝내면 유월은 빨아 다린 크고 부드러운 타월을 팔에 걸고 있다가 두 손으로 받들어 드릴 것이다. 그리고 숭이나 정선이가 머리를 빗거나 면도를 하면은 그 동안에 유월은 갈아입을 내복 기타 새 옷을 자리 밑에 묻을 것이다.
그것도 구김살이 안 지도록, 고르게 녹도록 조심을 하여서, 그리고 숭이나 정선이가 옷을 갈아입을 때에는 유월이가 곁에 서서 한 가지씩 한 가지씩 집어 섬길 것이다. 혹 차례를 잘못 하는 일이 있으면 그는 정선에게,
"왜 정신을 못 차려!"
하고 단단히 꾸중을 한마디 얻어들을 것이다.
옷을 다 갈아입으면 숭과 정선은 팔을 끼고 웨딩 마치를 휘파람으로 불면서 팔을 끼고 건넌방으로 간다. 건넌방은 식당으로도 쓰고 숭의 서재로도 쓰는 양식 세간을 놓은 방이다. 방 한가운데 놓인 둥근 테이블에는 붉은 테이블보 위에 하얗게 빨아 다린 식탁보를 깔고 토스트 브렘, 우유, 삶은 달걀, 과일, 냉수, 커피 등속이 다 상등제 기명에 담겨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숭과 정선은 기분이 좋은 때면 서로 껴안고 행복된 키스와 축복을 하고 아침을 먹을 것이다. 밤에 잘자고 아침 세수와 단장을 마친 그 프레시한 아름다움은 오직 내외간에만 보고 보일 특권을 가진 것이었다.
"어린애가 하나 있었으면."
하고 정선은 찻숟가락 자루로 식탁보를 긁으면서 말할 것이다.
"당신같이 생긴 어린애가 요기 요렇게 앉았으면."
하고 정선은 낯을 붉힐 것이다.
"정선이 같은 딸을 낳우."
하고 숭은 일어나 정선의 머리를 만지며 위로하였을 것이다.
정선은 아침 목욕과 샤워바드(머리 위에서 물줄기가 쏴하고 떨어지게 된 목욕 기계)를 퍽 좋아해서 집에다가 그 설비를 한다고 날마다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건물에 서양식 욕실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놈의 것 팔아버리고 양옥을 하나 지읍시다."
하고 정선은 목욕탕 이야기가 날 때마다 화나는 듯이 이러한 한탄을 하였다.
"조선 집에야 글쎄 방이 적어서 살 수가 있나. 피아노 하나를 들여 놓면 꼭 차지, 테이블 하나를 놓면 꼭 차지, 침대 하나를 놓아도 꼭 차지. WC를 가자면 십리나 되지, 안방에서 사랑에를 가자면 외투, 목도리까지 해야 하지, 글쎄 우리 조상은 왜 집을 이렇게 망하게 짓고 살았어."
하고 정선은 짜증을 내었다.
"터는 괜찮어, 우리집도."
하고 정선은,
"이걸 헐어버리고 양옥을 지읍시다."
하고 남편을 보고 보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