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은 더 묻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묻는 것이 도리어 제 위신에 관계되는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백 가지 말 다 듣지 아니하여도 정선이가 왜 저를 찾아갔는지 그것만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알 도리가 없었다.
"진지 잡수셨어요"?
하고 유월이가 슬쩍슬쩍 눈치를 보아가며 물었다.
"나가 먹고 올 테니 자리 펴 놓아라."
하고 숭은 그대로 일어나 나왔다.
열시나 되어서 숭은 저녁을 사먹고 짐을 가지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는 숭이 정선과 혼인할 때에 덮던 금침이 깔려 있었다. 이것은 정선의 유모가 특별한 생각으로 꺼내어 깐 듯 싶었다. 정선과 숭과의 애정이 이로부터 회복되라는 뜻으로.
숭은 자리에 누워서 멀거니 눈을 뜨고 이 생각 저 생각 하였다.
부부의 관계란 그렇게 끊기 쉬운 것일까.
Free love, free divorce.
(사랑도 자유, 이혼도 자유)
이러한 문자도 들었고, 문명했다는 여러 외국에서는 실지로 그것이 실행된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숭에게는 혼인이란 그렇게 가르기 쉬운 매듭 같지 아니하였다. 그것이 묵은 동양 사상일까, 또 예수교의 사상일까. 그럴는지 모르지마는 어느 남자가 어느 여자를 한번 사랑했다 하면 그것이 정신적인데 그친다 하더라도 벌써 피차의 정신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자국을 남기는 것이 아니냐.
숭은 그것을 저와 유순과의 관계에서 본다. 유순에게 대한, 발표는 아니한 사랑이 숭의 지금까지의 생활에 끊임없는 양심의 찌름을 주지 아니하던가. 숭의 생각에는 이로부터 백년을 살더라도 제가 유순에게 가졌던 사랑의 흔적은 스러질 것 같지가 아니하였다.
그러하거든 하물며 혼인이라는 중대한 맹약을 통하여 일러진 부부의 관계랴. 정신과 육체가 다 하나로 합하여진 부부의 관계랴. 설사 정선과 일생을 서로 떠나 있기로 숭의 가슴에는 정선의 그림자가 떠날 줄이 있으랴.
설사 정선이가 죽어 버린다 하더라도 그가 숭에게 주던 기쁨의, 슬픔의, 사랑의, 아니 이 모든 것을 합해 놓아도 꼭 그것이 되지 아니할 그 어떤 무엇은 영원히 숭의 몸과 마음에 배고 스며서 빠지지를 아니할 것 같았다. 하물며 여자 편에서는 남자의 정액을 흡수하여 체질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다 함에랴. 정선의 몸과 마음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아니할 숭의 낙인(단 쇠로 지져서 박은 인)이 찍힌 것이 아니냐.
숭에게 있어서는 혼인은 다만 법률적 계약 행위만은 아니었다. 법률이 규정하는 것은 혼인의 법률적 일면뿐이다. 도덕이 규정하는 것은 혼인의 도덕적 일면뿐이다. 혼인에는 예술적 일면도 있고 생물학적 일면이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종교적 일면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모아 놓더라도 그것이 혼인이란 것이 가진 모든 뜻을 다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무슨 신비한 것"
이렇게 숭은 생각하였다. 인생에 신비한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부부 관계일 것이다. 전연 아무 관계 없는(불교에서 말하는 모양으로 전생 타생의 인연이란 것이 있다면 몰라도) 두 생명이 서로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라나서 일생의 운명을 같이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일이 아니냐.
"두 몸이 한 몸이 된다"
는 우리 조선의 생각이나, 불교의 타생 인연설이나 다 이 부부의 신비성을 말한 것이 아닐까 하고, 숭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내 생각이 구식이어서 이런가. 남들은 이 시대에는 정말 사랑도 자유, 이혼도 자유라는 주의로 가는데 나 혼자만 혼인이란 것을 이렇게 신비하게, 신성하게 생각하는가. 만일 "우리 다"를 위해서 "나 하나"를 희생하는 경우면 몰라도 "나 하나"의 향락을 위해서 혼인의 신성을 깨뜨릴 수가 있을까. 내가 톨스토이 모양으로 도덕에 너무 엄숙성을 많이 가진 때문일까"
숭은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 가정은 벌써 파괴된 것이 아닌가. 파괴되었다고 보는 것은 내 잘못된 생각인가. 이 박사의 말을 잘못 믿은 것이 아닌가. 경성역 앞에서 번뜩 본 자동차, 그 속에 앉은 두 남녀, 정선과 갑진, 그것도 잘못 본 것이었던가. 밤에 늦게 돌아온 것이 반드시 실행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 모두 내 잘못된 판단이 아닐까"
숭의 눈에는 고운때 묻은 아내의 치마와 저고리가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