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이가 기쁨과 힘을 얻은 것은 반드시 화랑 이야기에서만 아니다. 화랑 이야기는 당연히 조선의 젊은 사람의 기운을 돋울 일이지마는 그것보다 힘이 있는 것은 한 선생의 쉬임 없는 노력과 떨어짐 없는 희망이었다. 잘 되어 가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희망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잘 되지 아니하는 일에 그 하는 것이 더욱 감격되는 것이었다.

 

그의 일생의 노력의 결과가 무엇이냐 하면 그것을 화폐가치로 환산할 것이 없음은 물론이지마는 화폐 말고라도 무슨 숫자로 표현할 성적이 별로 없었다. 그는 매일 사오 인의 청년을 만나니 일년에 천여 명 청년을 만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다 새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대단히 큰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일의 뜻을 알아주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진실로 알아준다면야 의식이 걱정될 까닭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심 안 맞는 노릇이 또 어디 있을까.

 

숭이가 하는 노릇도 심 안 맞는 노릇이다. 그렇지마는 조선이 오늘날에 가장 크게 요구하는 것이 이 심 안 맞는 노릇이 아닌가. 심 안 맞는 이 노릇을 하는 사람이 많아야 할 터인데 적어서 걱정이다. 모두들 이해관계가 분명하고 너무들 똑똑해서 저 한 몸의 이로움이 없는 일은 매달고 쳐도 아니하려 드는 이 때다.

 

조선은 똑똑하지 못한 사람을 기다린다. 어리석어서 저 한 몸의 이해를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을 구한다. "제앞쓸이"는 정돈된 사회에서만 쓰는 처세술이다. 어떤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대단히 많이 떨어져서 모든 것을 새로 설시하고 부리나케 따라가려 하는 때에는 남의 앞까지 쓸어주는 사람이 많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마치 아이들을 많이 데리고 다니는 어른 모양으로. 그럼에도 그런 사람은 밤낮 고생이다. 남에게 고맙다는 소리 못 듣고, 도리어 미친 사람이라는 비웃음 받고, 약빠른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다. 한 선생이 그러한 사람이 아니냐. 숭이도 장차 그러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돈도 없고, 세력도 없고, 명예도 없는 사람이, 땅 속에 묻히는 사람이 만일 이러한 운동이 공을 이루어 큰 집이 지어지는 날이 있다고 하면 한 선생이나 숭 자신이나 다 수십 척 깊이 묻히는 기초공사에 쓰이는 한 덩이 벽돌이다.

 

한 선생은 이 조금도 빛나지 않는 소임을 만족히 여기고 파멸되어 가는 개인 생활을 도무지 염두에 두지 아니하는 것이 숭에게는 더할 수 없이 부러웠다.

 

"오냐, 나는 가정을 파괴해 버리자"

 

이렇게 숭은 교동 골목을 내려오면서 결심하였다.

 

"원래 나는 혼인을 아니해야 옳은 사람이다."

 

하고 숭은 혼인이라는 것이 어떻게 사람을 속박하고 (특별히 사람의 정신을), 사람의 정력을 허비하는 일인 것을 알았다.

 

"수천만 동포로 하여금 행복된 가정을 가지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가정을 가지지 말자"

 

하는 것이 어떤 작가의 말이다.

 

"장가를 아니 든 이는 장가를 들지 말고, 시집을 아니 간 사람은 시집을 가지 말아"

 

한 예수의 사도 바울의 말의 뜻이 새삼스럽게 알려지는 것 같았다.

 

"옳다, 나는 가정을 깨뜨려버리자. 나는 일생을 혼자 살면서 농촌 일을 하자. 농촌으로 내 애인을 삼고 아내를 삼자. 정선은 맘대로 뜻 맞는 남편과 다시 혼인해서 살라고 하자"

 

이렇게 생각하고 숭은 아내 정선에게 대한 모든 미움을 쓸어버리고 집-정선의 집으로 빨리 걸었다.

 

숭은 거의 반 년만에 내 집 문앞에 섰다. <許崇(허숭)>이라고 쓴 그의 문패가 그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숭은 문앞에 서서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첫째로 생각나는 것은 장인이 이 집을 마련해 준 뒤에 저와 정선과 두 사람이 날마다 와서 몸소 목수와 도배장이를 감독하여 집을 수리하던 일이다. 스위트 홈을 그리고 꿈을 꾸던 그 때 일이 그렇게도 부끄럽기도 하였다.

 

숭은 그 때에 유순에게 대한 미안이 염통 속에 박힌 철환 모양으로 행복된 마음을 아프게 하던 것을 기억한다.

 

정선은 유순보다 교육이 높고, 돈이 많고, 세력이 있기 때문에 제가 그리로 끌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부끄럽던 것을 기억한다.

 

만일 정선과의 혼인을 아니하였더면, 유순과 혼인을 하였더면 이런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저 놈 돈 따라 장가든다" 하는 명예롭지 못한 소문만 남기고 이 꼴이 아니냐. 숭은 마치 양심이 허락지 아니한 행위, 사욕에 끌린 행위에서 오는 면치 못할 벌을 받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아내가 미인이라고 스위트 홈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고등한 교육을 받았다고 스위트 홈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좋은 집이 있고, 돈이 있고, 지위가 있고, 건강이 있고,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 있다고 스위트 홈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숭이란 남편, 정선이란 아내, 그들이 어디가 부족하냐. 누가 보더라도 어느 모로 보더라도 맞는 짝이 아닐 수 없건마는 그네들은 불행하지 아니하냐.

 

그러면 그 불행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 성미가 맞지 아니함? 성미란 대체 무엇이냐, 숭은 얼른 대답할 수가 없었다.

 

숭은 뒤숭숭한 생각을 잊어버리기나 하려는 듯이,

 

"문 열어라!"

 

하고 크게 소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