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은 세수를 하고 산월이가 솔질해 주는 옷을 받아 입고 산월의 집 문 밖을 나서 전동 자기 여관으로 돌아왔다. 때는 오정이 지나고 새로 한시.

 

숭은 여관에 돌아온 길로 자리를 펴고 드러누워서 멀거니 어젯밤과 오늘 아침 일을 생각하였다. 분명히 숭은 인생의 아직 보지 못한 방면을 본 것 같았다.

 

그러나 아내 정선은 어찌 되었는가 하고 생각하는 동안에 숭은 노곤히 잠이 들어버렸다.

 

숭은 아무리 하여도 집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것을 집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제게 대한 큰 욕인 것만 같았다.

 

숭은 도리어 산월이가 그리움을 깨달았다. 그 믿지 못할 정선보다는 도리어 산월이가 미덥고 그리웠다. 다시 산월을 찾아갈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차라리 산월과 연애관계를 맺어서 정선에게 대한 원수를 갚을까 하는 생각도 났다. 에라, 또 어디 가서 술이나 먹을까, 산월을 불러 가지고 술이나 먹을까. 그러다가 취하거든 또 산월의 집으로 갈까, 이러한 생각도 났다.

 

산월은 미인이었다. 재주도 있었다. 더구나 기생으로 닦여난 그의 친절하게 감기는 맛이 숭에게는 잊을 수가 없었다.

 

숭은 여관에서 물끄러미 이런 생각을 하고 앉았을 때에 전등이 들어왔다.

 

"아뿔사, 내가 타락한다"

 

하고 숭은 머리를 흔들었다. 거기 붙은 부정한 무엇을 떨어버리기나 하려는 듯이.

 

"내가 내 몸의 향락을 생각하느냐"

 

하고 숭은 벌떡 일어나 몸을 흔들었다.

 

이러한 때에 숭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은 한 선생이었다. 낙심되려 할 때에, 한 선생은 항상 어떤 힘을 주었다. 숭이 생각하기에 한민교 선생은 큰 힘의 샘이었다.

 

숭은 모자를 벗어 들고 여관에서 뛰어나와 익선동 한 선생의 집을 찾았다. 한참 못 보던 그 조그마한 대문, 꺼멓게 그을은 문패, 모두 숭이가 오륙 년 동안 눈익게 보아오던 것이다.

 

대문을 열어 주는 것은 한 선생의 딸이었다. 한 반년 못 본 동안에 퍽 자란 것 같았다. 그는 숭을 친오빠와 같이 반갑게 맞았다.

 

"선생님 계시오"?

 

"네."

 

"손님 오셨소"?

 

"네. 그저 늘 같은 손님이지요."

 

하는 동안에 마루 앞에 다다랐다. 이것이 양실이라는 마루다.

 

"양실 안 쓰시오"?

 

하고 숭은 구두끈을 끄르며 물었다.

 

"안 써요."

 

하고 정란은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였다. 한 선생의 생활이 더욱 곤란해져서 겨울에 석탄값 들고 전등값 드는 양실을 폐지하고 안방 하나만을 쓰는 것이었다.

 

안방에는 아랫목에 한 선생이 앉고, 발치에 부인이 앉고 그리고는 청년 사오 인이 둘러앉았다. 발치 부인 곁 비인 틈은 필시 정란이가 앉았던 자리라고 숭은 추측하였다.

 

"아, 허 변호사!"

 

하고 한 선생은 벌떡 일어나서 숭의 손을 잡아 흔들며,

 

"언제 왔소"?

 

하고 반갑게 벙글벙글 웃었다. 그 얼굴은 더욱 수척하여서 뺨의 우물에 그림자가 생기고 눈가죽과 입술에 늙은이 빛이 완연하게 보였다. 더구나 이가 여러 개가 빠진 것이 한 선생을 더욱 늙게 보였다. 그것이 숭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어제 저녁에 왔습니다."

 

하고 숭은 늦게 찾아온 것이 미안하다는 것을 표정으로 보였다.

 

"지금도 우리는 농촌사업 이야기를 하고 또, 허 변호사 말을 하고 있었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하하하. 자 여기 앉으우. 손이 차구려. 그 동안은 중병을 하실 때도 내가 가 보지도 못하고, 자 이리 와 앉으우."

 

하고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숭에게 내어주고 자기는 문 밑으로 나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