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은 무슨 생각이 나는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영감 어디 가세요"?
하고 산월도 따라나갔다.
"흥, 홀딱 반했구나."
하고 나 많은 기생은 반쯤 남은 위스키 잔을 화나는 듯이 들이켰다.
"누가 반해"?
하고 어린 기생도 기회를 얻어서 임 변호사의 팔을 뿌리치고 나와서 나 많은 기생 곁에 앉는다.
"아이 배고파."
하고 늙은 기생이 손벽을 딱딱 때린다.
"그래 무어 갖다 먹어라."
하고 강 변호사는 술잔을 내밀며,
"망할년들 먹을 것만 알지."
하고 술 달라는 빛을 보인다.
"아이 그만 잡수."
하고 늙은 기생은 술병을 감추려다가 부득이하다는 듯이 술을 따른다.
강 변호사는 술 먹기는 잊어버리고,
"술이 좋기는 좋거든. 세상에 남아가 먹을 것이라고는 술밖에 또 있던가. 하하하하, 안 그러냐 이놈"?
하고 입을 우물거린다.
"술 엎질러져요!"
하고 늙은 기생은 흔들거리는 강의 팔을 붙들어 진정을 시키다가, 그래도 강의 팔이 말을 아니 들으매 그는 술잔을 빼앗아서 강의 입에 갖다 대어준다. 강은 떠들다 말고 술을 들이켠다.
"어 좋다."
하고 강은 눈을 끔적하고 무릎을 탁 친다.
"술이 참 좋기는 하오."
하는 늙은 기생이,
"그 고리탑탑한 샌님이 단박에 놀아나고, 또 대단히 도고하던 산월이도 아주 허 변호사 영감께 홀딱 반했는데. 글쎄 뒷간에 가는 데를 다 따라가는구먼."
하고 샘이나 내는 듯한 표정을 보인다.
"재자가인이라니 재자가인이라니. 재…자…가…인이란 말이다. 이놈들 하하하하. 얘들아, 요새 기생년들은 돈밖에 모르지, 응 옳지 돈밖에 몰라. 돈만 준다면 개하고라도 잔댔것다. 이놈, 네가 그랬지. 이놈 죽일놈 같으니."
"아냐요. 내가 그랬나 머. ○○이가 그랬지."
"○○이가 그 말을 잘못했어. 어디 그렇게 말하는 법이 있나."
"그래 너희년들은 돈만 알지 않구? 도적년들 같으니."
"왜 도적년이요? 우리가 왜 도적년이요? 변호사는 어떤데? 어미 애비 걸어 송사하는 자식이라도 돈만 주면 변호 안하시오"?
하고 어린 기생이 칼끝 같은 소리를 지른다.
"옳아, 옳아! 하하."
하고 늙은 기생도 박장을 하고 웃는다.
"예끼 이년들!"
하고 임 변호사가 정말 성을 낸다. 임 변호사는 맘에 걸리는 것이 있던 것이다.
"아서, 이 사람. 걔들 말이 옳지 아니한가. 우리네 변호사들도 ?들과 별로 다를 것 없지. 돈을 목적 삼고서 아무러한 송사라도 맡으니까…그런데 말이다. 옛날 기생은 말야. 옛날에는 기생 중에도 의기도 있고 문장도 있고, 잘난 사람도 있었더란 말이다.
진주 논개만이 의기가 아니라 옛날 송도에 황진이(黃眞伊)라는 기생도 용했거든. 인물 잘나고 글 잘하고, 황 진사의 딸이야. 왜 기생이 됐는고 하니, 잘난 남아를 한번 만나보자고 되었단 말이다. 자칭해 말하기를 말야. 송도에 삼절이 있다고, 박연 폭포 서화담(徐花潭), 황 진이라고 뽐내었거든. 기생이라도 이만한 포부와 자존심이 있으면야 그야 대접 받지. 그야말로 길 아래 초동의 집낫이야 걸어볼 수가 있나. 어디 너희들도 좀 그래 보렴, 하하하하."
하고 술도 없는 술잔을 술이 있는 줄 알고 들이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