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에 태서관 모퉁이에서 왁자지껄 하고 떠들고 나오는 이가 있었다. 그 어성은 숭이가 잘 아는 강 변호사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이는 임 변호사였다. 둘이 다 변호사 중에 호걸 변호사로 돈은 잘 번다 하지마는 밤낮 궁상을 떼어놓지 못하는 변호사들이었다. 그들은 술을 좋아하고, 떠들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의리를 좋아하는, 옛날 동양식 호걸들이었다. 무척 거만하여 안하무인이지마는 또 노소동락하는 풍도도 있었다.
"하하! 내가 몰라? 다 알어, 다 알어!"
하고 뽐내는 것이 강 변호사였다.
"어, 그놈 후레아들놈 같으니."
하고 무엇에 하던 분개가 아직도 풀리지 못한 것이 임 변호사였다. 숭은 존경하는 선배들에게 대하여 공손하게 모자를 벗었다.
"누구요? 어, 허군이야. 하하하하."
하고 강은 숭의 손을 잡아 흔든다. 이것은 강이 숭을 후배 변호사지마는 내심 존경하여서만 그런 것이 아니요, 숭의 겸손과 공손이 강의 호걸적 의협심을 움직인 것이었다.
"응, 노형이던가"?
하고 임 변호사가 또 허숭의 손을 잡아 흔든다.
"그런데 웬일이오? 어디 시골 가서 농촌 사업 하신다고"?
하고 임이 숭에게 묻는다.
"네. 농촌 사업이랄 것이 있나요, 아직 공부지요."
"아따, 그런 소리는 다 다음에 하고."
하고 강은 새로 흥이 나는 듯이,
"자, 허군을 만났으니 새로 어디 가서 한잔 먹지에."
하더니 단장을 들어 내어두르며,
"얘, 택시야."
하고 종로 네거리를 향하여 고래고래 부른다.
인력거들이 모여든다.
"영감, 어디로 모시랍시오."
하고 한 인력거꾼이 인력거를 놓고 어깨에 덮었던 담요를 팔에 걸고 세 사람의 앞으로 다가온다.
"이건? 자동차 부르는데 인력거가 왜 덤벼."
하고 강은 아주 장히 노엽기나 한 듯이 눈을 부릅뜬다.
"저희도 좀 벌어먹어얍지요, 자 타십쇼."
하고 인력거꾼은 인력거 채를 끌어서 바로 강 변호사 앞에다 대고 팔에 걸었던 담요를 다시 어깨에 걸고, 그리고는 앉을 자리를 잘 펴고 기대는 쿠션을 한 손으로 누르고,
"영감, 자 타십쇼."
하고 허리를 굽신굽신한다.
다른 인력거들은 어찌 되는 것인가 하고 반은 이해 관계로, 반은 호기심으로 하회를 보고 있다가 뱃심 있는 인력거꾼이 하는 양을 보고는 저희들도 인력거를 내려놓고 섰다.
강 변호사는 취한 눈으로 여러 인력거꾼(채를 놓은 세 인력거꾼과, 밖으로 둘러선 서너 인력거꾼들)을 둘러보더니 자기 앞에 놓인 인력거에 올라앉으며,
"나 노형의 직무에 대한 충실과 열성에 감복하였소." (이것은 자기가 타는 인력거꾼에게 하는 말이나, 그 인력거꾼은 자기에게 하는 말인 줄을 모르는 모양이다)
하고 다른 인력거들을 돌아보며,
"글쎄, 이 못생긴 놈들아, 이 사람 모양으로 손님 앞에 바짝 대들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다른 손님을 구하러 가든지 하지그려, 그래 눈치만 보고 엉거주춤 하고, 예끼 굶어 죽을 놈들 같으니."
하고 단장을 둘러메니 인력거꾼들이 닭들 모양으로 꼬리를 젓고 달아난다.
"하하하하."
하고 강은 웃는다.
숭도 강 변호사 임 변호사를 따라 인력거를 타고 ○○관으로 갔다. ○○관은 서울에서 가장 큰 요리점이요 조선에서도 가장 큰 요리점이다. 전등 빛이 휘황한 현관(玄關-본래 일본말로서 집의 정면 들어가는 데)에는 머리 벗어진 늙은 보이 하나가 어떤 인버네스 입고 안경 쓴 손님 하나의 주정을 받고 있고, 그 옆에는 기생 둘이 얼빠진 것 모양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치 그 주정뱅이 신사에게 가지가지 아양을 다 부려도 효과 없는 것을 보고 무심해진 것 같았다.
"아이, 아버지 오십쇼"?
둘 중에 한 기생이 갑자기 생기를 띠며 강 변호사의 손을 잡아 끈다.
"이년은 아버지는 왜 아버지래. 내가 네 어미가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데."
하고 강 변호사는 구두도 벗지 아니하고 시비를 건다.
"아이구 그렇게 노여실 거 무어 있소. 애기 아버지란 말로만 들으시구려."
하고 곁에 섰던 좀 나 많은 기생이 농친다.
"그럴까, 하하."
하고 강 변호사는 웃고,
"오, 내 딸년 착하지."
하고 어린 기생의 어깨를 두드린다.
"옳지, 아버지라면 마다구선 또 딸이라네."
하고 어린 기생이 입을 삐쭉한다.
"딸이란 말이 노엽냐."
하고 임 변호사가 곁에서,
"노엽거든 장모의 딸이란 말로만 들으려무나."
하고 어깨 위로서 손을 넘겨 그 어린 기생의 뺨을 꼬집는다.
"아야!"
하고 어린 기생이 소리를 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