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영의 말을 들은 숭은 큰 모욕이나 당한 사람 모양으로 맘둘 곳을 몰라 허둥지둥 짐을 한 손에 들고 전차 정류장을 향하여 나왔다. 바다와 같이 넓은 마당을 흐르는 얼음덩어리와 같은 자동차를 피하여 나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맘에 산란한 심서를 가진 사람으로 그러하였다. 숭은 버스 정류장 가까이 왔을 때에 갑자기 몰아오는 어떤 자동차에 하마터면 스칠 뻔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 자동차는 요란하게 사이렌을 불고 숭에게 먼지와 가솔린 연기를 끼얹고 청파를 향하여 달아났다.
자동차를 피하느라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숭은 아까보다 더한 놀람으로 두어 걸음 지나간 자동차의 뒤를 따랐다. 왜? 숭은 그 자동차 속에 아내 정선과 갑진이가 타고 있는 것을 본 까닭이었다. 갑진은 왼편에 앉고 정선은 오른편에 앉아 갑진의 오른편 팔이 정선의 어깨 뒤로 돌아와 있고, 마침 무슨 말을 한 끝인지는 모르나 두 사람이 유쾌하게 웃으며 서로 마주 고개를 돌리는 장면까지 분명히 보였다.
숭은 자기의 눈을 의심하려 하였다. 그러나 의심하기에는 이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밖은 어둡고 자동차 안은 밝지 아니하냐. 제 아내를 잘못볼 숭도 아니요, 또 다른 사람하고 혼동될 갑진도 아니다.
숭은 건영의 말의 확실성을 불행히도 승인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숭은 맘의 모든 평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가슴이 높이 뛰고 손발이 식고, 무릎이 마주치는 것을 스스로 의식할 때에는 숭의 혼은 질투와 분노로 타올랐다.
"다꾸시!"
하고 숭은 손을 들고 소리를 쳤다. 정거장 앞에 모여 섰던 자동차 속에서 차 한 대가 굴러나왔다.
운전수는 문을 열고 뛰어내려서 숭의 짐을 차에 올려 싣고 숭을 태웠다.
"어디로 가랍시오"?
하고 운전수는 숭을 돌아보았다.
"인도교를 향하고, 속력을 빨리 내주시오."
하고 숭은 당황한 빛을 억지로 눌러 감추며,
"지금, 바로 두어 자동차 앞에 지나간 자동차를 따라만 잡으면 돈 십원 주리다. 자 어서!"
하고 숭은 자기의 몸으로 자동차를 끌기나 하려는 듯이 몸을 앞으로 숙인다.
운전수는 활동사진에서 보던 자동차가 자동차를 따르는 광경을 연상하며 한편 호기심도 나나 한편 무시무시도 하였다. 그러나 십원 상금이 노상 비위를 당기지 아니함이 아니므로 마일표가 이십 오를 넘기지 아니한 정도에서 속력을 내었다.
그러나 이 차는 낡은 차였다. 겉은 제법 고급차 모양으로 번드르하게 발라놓았지마는 속력을 내려면 낼수록 터드럭터드럭 소리와 가솔린 냄새만 나고 도무지 속력은 나지 아니하였다.
뒤에서 뿡 하고 오던 자동차가 숭의 차를 떨구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숭은 더욱 초조하였다.
"더 속력을 못 내우."
하고 숭의 어조에는 노여운 빛조차 띠어 있었다.
"시내에서는 이십 오 마일 이상은 못 냅니다. 취체당합니다."
하고 운전수는 도리어 속력을 줄였다. 아무리 터드럭거려도 더 빨리는 못 갈 것이니 어차피 십원 상금은 틀린 바에는 가솔린만 낭비할 필요는 없다는 배짱이다.
숭은 더욱 화가 남을 깨달았으나 어찌할 수가 없었다. 뒤따르던 몇 자동차를 앞세우고 고만 기운이 빠져서 쿠션에 몸을 던지고 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터드럭거리는 헌 자동차도 한강 인도교에 다다를 때가 있었다.
"철교를 건너가요"?
하고 운전수는 임검구역에서 잠깐 차를 세우고 물었다.
숭은 턱을 들어서 가자는 뜻을 표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운전수를 두들겨패고도 싶었다. 어차피 아내의 자동차를 따라잡지 못할 줄을 알지마는, 그래도 혹시나 인도교에서나 만날까 하고 따라가는 것이었다.
"만나면 어쩔 테야"?
하고 숭은 스스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