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하고 정선이가, 순이가 방에 들어오는 동안이 바빠서 쌍창을 열며 팔을 내민다.

 

"두 조각밖에 없어요."

 

하고 순은 의식적으로 다소 악의를 품고 아주 대담하게,

 

"풍문, 연애, 머 그런 소리가 있어요. 그리고 영이라고 하는 것이 편지한 이의 이름자인가 보아요. 그만 하면 더 찾지 아니해도 괜찮습니까"?

 

하였다.

 

순의 말에 정선은 낯이 빨개지며 쌍창을 빨리 닫았다. 너무 빨리 잡아당기는 바람에 문이 비뚜로 걸려서 닫혀지지를 아니하였다.

 

정선은 순이가 노상 어린애가 아닌 것을 발견하였다. 맹랑한 것이라고 하였다. 순이가 어린애가 아닌 것을 발견하자 정선의 가슴에는 불쾌한 물결이 이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순아, 이리 들어와."

 

하고 정선은 순을 불러놓고 바늘박은 솜방망이로 문초를 시작하였다.

 

"선생님 빨래는 누가 하니, 네가 하지."

 

"저도 하고 할머니도 하고 그러죠."

 

"뜯기는? 빨래 뜯기는"?

 

"뜯기도 그렇지요."

 

"아이, 참 퍽들 애들 썼구나."

 

"선생님 상은 누가 드리니"?

 

"상은 제가 드리죠."

 

"늘"?

 

"네."

 

"그럴 테지. 너밖에 드릴 사람이 있니"?

 

"선생님 자리는 누가 깔고, 걷고 하니"?

 

"……"

 

"그도 너밖에 할 사람 있니"?

 

"그런 말씀은 왜 물으세요"?

 

하고 순은 불쾌한 빛을 보였다.

 

"아니 그저 알고 싶어서 하는 말이지. 너 노했니"?

 

하고 정선은 미안한 빛을 보인다.

 

"노하긴요."

 

하고 순은 슬픈 표정을 보이며,

 

"선생님은 자리 까는 것, 개키는 것, 방 치우는 것, 세숫물, 진짓상 내놓는 것, 방에 군불 넣는 것까지 다 손수 하신답니다. 어디 누구를 시키나요. 해드려도 마다하시지요."

 

순의 대답에 정선은 면목을 잃었다. 그래서 화제를 돌리려고,

 

"선생님은 하루 종일 무얼 하시든? 밖에 나가시든? 집에 계시든"?

 

하고 딴 문제를 물었다. 그러나 그 문제 속에도 남편과 순과의 관계를 염탐하려는 경계선은 눈에 안 보이게 늘어놓았다.

 

"잠시도 쉬실 새가 있으신가요. 식전 일찍 일어나시면 방 치우시고, 마당 쓰시고, 나무 가꾸시고, 그리시고는 강가로 나가시지요. 강에 나가셔서 체조하시고, 그리고는 목욕하시고 그리고 들어오셔야 해가 뜨는걸요. 처음에는 혼자 그러시더니 차차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따라와서 한 달 전부터는 새벽이면 앞 등성이에 모여서 정말 체조하고 그리고는 동네 길 쓸고, 그리고는 목욕하고, 달음질도 하고 돌도 굴려오고, 나무도 날라오고 또 땅 얼기 전까지는 저 토끼우물 앞에 논을 풀구요. 요새는 한 십오 명씩 모였답니다.

 

와, 와, 와, 소리를 지르고, 또 아침 일찍 일어나, 해 뜨기까지 동무 일하세, 우리 일하세 하고 노래도 부르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들도 뛰어나가고 싶어요. 오는 봄부터는 부인네들도 그렇게 한다고요. 남성들이 식전마다 일궈놓은 논이랑, 밭이랑, 그것을 아낙네들이 공동 경작을 해서 동네 아이들 월사금, 책값 점심값을 삼는다구요. 교육비로 세워서."

 

하고 허숭의 사업을 설명하는 데는 유순은 문뜩 유쾌해지고 기운이 난다. 그놈의 종이조각 문제에 뭉클했던 가슴이 뚫리는 듯하였다. 그뿐 아니라 도무지 쓸데없는 생각이라고는 아니하는 듯한 정선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아까 들어오실 때에 동네로 안 들어오시고 저 여울 모룻길로 돌아 들어오셨지요. 그리셨길래 그리 오셨지. 동네에는 선생님이 오셔서 변한 것이 많답니다. 새로 생긴 것도 많고요. 타작마당 만들었지요. 큰 광 짓고, 외양간 짓고, 돼지우리 짓고, 타작마당은 부잣집 몇집 내놓고는 다 한마당에 낟가리를 가리고 한마당에서 타작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마당가에는 소외양간과 돼지우리와 닭장이 있고, 거기다는 집 한 채를 짓고 그 모든것을 지키는 사람이 있거든요. 쌍동이네라고, 그러니깐 동네 집 마당은 아주 깨끗하단 말야요. 아직도 제 집에 외양간 두고 닭 놓는 사람도 있지마는 인제 다 없어질걸요. 선생님은 아침만 잡수시면 동네를 한번 도시지요. 어디 병난 사람이 없나, 무슨 걱정난 집이나 없나 돌아보시죠.

 

그러면 선생님 우리 젖먹이가 젖을 토해요, 오늘이 월사금 가져갈 날인데요 하고들 나선답니다. 그리고는 타작마당으로, 소, 돼지, 닭 다 돌아보시고, 그리고 밤에는 또 야학 있고, 또 조합 사무 보시고, 어디 요만큼이나 편히 쉬실 새가 있나요, 없답니다. 그러나 그뿐인가요, 선생님이 변호사시래서 사방에서들 송사 물으러들 오지요. 어떤 사람은 닭 한 마리를 들고, 어떤 사람은 술병을 사 차고. 그러면 선생님이 받으시나요, 굳이 받으라면 그 닭은 병 없는 동네에서 온 것인가를 알아보아서 동네 닭에 넣지요. 그러신답니다."

 

하고 유순은 두 뺨이 불그레 상기가 되면서 허숭의 이야기를 열이 나서 한다. 그것을 듣는 정선은 한껏 자기가 일찍 보지 못하던 숭을 보는 데 대하여 일종의 두려움을 깨닫는 동시에 순이가 아주 숭을 제것인 듯이 여겨서 흥분하여 말하는 것, 마땅히 주인이어야 할 아내인 자기가 도리어 순에게 설명을 듣고 앉았는 사람이 된 것이 불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