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시가 넘은 겨울의 한강 인도교에는 짐마차와 노동자,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들밖에 별로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용산, 삼개에 반짝거리는 전등, 행주산성인가 싶은 산머리에 걸린 반달, 그것이 모두 쓸쓸한 경치를 이루었다.

 

자동차가 노들을 향하고 철교를 건너가는 동안에, 또 서울을 향하고 다시 건너오는 동안에 숭은 바쁘게 이쪽저쪽을 돌아다보았으나 정선인 듯한 사람은 없었다.

 

"문안으로 들어갑시다."

 

하고 숭은 운전수에게 명을 내렸다. 자동차의 속력이 느려서 정선의 자동차를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면 당장에 뛰어내려서 한바탕 분풀이라도 하고 싶은 맘이 났으나, 숭은 일찍 한 선생이 하던 것을 생각하고 꾹 참았다.

 

어떤 손해를,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일에 말썽을 부리는 것이 조선 사람의 통폐어니와, 이것은 피차에 받은 손해를 더 크게 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설렁탕 그릇을 목판에 담아서 어깨에 메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사람이 다른 자전거와 충돌하여 둘이 다 나가 넘어져서 설렁탕 그릇을 깨뜨리고는 끝이 없이 둘이서 네가 잘못이니, 내가 잘못이니 하고 경우 캐고, 욕하고, 쥐어박고 하는 것을 보고 한 선생이 하던 말이다.

 

"우리 동포들의 싸움은 개인싸움이나, 당파싸움이나 이런 것이 많다. 증이파의(甑已破矣, 시루가 이미 깨져, 다시 본래대로 만들 수 없음을 뜻함)라 앞에 할 일을 하면 고만일 것을 지난 일의 책임을 남에게 밀려고 아무리 힘을 쓰기로 무슨 효과가 있나."

 

하고 충돌된 두 자전거더러,

 

"파출소에를 가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집으로 가라."

 

는 제의를 하였으나, 한 선생의 제의는 두 싸움꾼에게 통하지 아니하였다.

 

숭은 자동차 운전수에게 대해서 시비를 하고 싶은 맘이 억제하기 어려울 지경이었으나 한 선생의 말을 생각하고 꾹 참았다.

 

숭은 전동 어느 여관에 들었다. 집을 서울에 두고 여관에 드는 것이 스스로 부끄러웠으나, 지금 집이라고 들어갈 면목은 없었다. 언젠가 한번 아는 사람이 들었던 여관을 찾아든 것이었다. 시계는 열한 시를 쳤다.

 

숭은 자기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나온 것은 분명 유월이었다. 정선은 아직 안 들어왔다고 한다.

 

숭이가 멀거니 앉았는 것을 본 체 만 체 보이는 자리를 폈다. 초록 바탕에 다홍 깃을 단 인조견 이불의 색채는 찬란하였다.

 

방은 하그리 숭하지 않지마는 책상 하나, 옷장 하나, 그림 한 폭 없는 훼뎅그렁한 방-이것이 서울 복판의 일류 여관인가 하면 슬펐다. 이러한 빈약한 문화를 가지고 조선 사람은 남보다 더 노라리 생활을 한다고 하던 한 선생의 말이 생각났다. 무슨 괴로운 일이 있으면 한 선생의 말은 새로운 뜻과 힘을 가지고 생각에 떠오르는 버릇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생각을 오래 계속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 아내가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팔방으로 날이 달린 송곳으로 가슴을 휘젓는 것 같았다.

 

"질투는 낮은 감정이다."

 

하고 스스로 책망하나, 그것은 눌러지지를 아니하였다.

 

숭은 잠깐 다녀온다 하고 종로로 뛰어나왔다. 자정 가까운 종로에는 주정꾼과 인력거꾼들이 마치 밤에만 나오는 짐승들같이 돌아다닐 뿐이었다.

 

"어디 가서 무엇을 좀 먹자"

 

하고 숭은 출출함을 느끼면서 걸었다. 생각하면 저녁을 아니 먹었다. 집에 가면 아내가 저녁을 차려놓고 마중 나왔으리라고 믿는 남편이 약간 시간이 늦는다고 차에서 저녁을 먹을 까닭이 없었다.

 

겨울 밤의 종로 네거리. 붉은 이마 불을 단 동대문행 전차가 호기있게 소리를 내고 달아난 뒤에는 고요해졌다. 가끔 술 취한 손님을 실은 택시가 밤 바닷가에 나와 도는 갈게 모양으로 스르륵 나왔다가는 스르륵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어디를 간담"

 

하고 숭은 화신상회 앞에 멀거니 섰다. 어디 가서 무엇을 사먹을는지 모르는 것이다. 숭은 아직도 요릿집에는 길이 익지 못하였던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