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숭은 어찌하여 공판 기일도 되기 전에 갑자기 서울로 올라갔나?
그것은 바로 정선이가 갑진이와 같이 오류동으로 가던 날 전날 아침이었다. 허숭은 여덟시경에 이건영의 편지를 받았다. 그것은 정선이가 갑진이와 너무 가까이 한다는 소문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숭은 건영을 믿지 아니하기 때문에 그 말을 한 모함으로 알았다. 더구나 남의 말을 듣고 제 아내를 의심하는 것은 옳지 아니한 일이었기 때문에 숭은 남의 아내의 말을 하는 건영에게 대하여 반감까지 가졌다. 정선이가 본 숭의 일기의 문구는 그것을 표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마는 숭의 맘은 의리의 해석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의 맘은 무척 괴로왔다. 정선과 갑진과-라는 관념은, 새 잡는 약 모양으로 끈적끈적하게도 숭의 맘에 달라붙어서 도무지 떨어지지를 아니하였다.
허숭은 하루 온종일 괴로와하였다. 아내를 의심하는 것은 옳지 아니하였다. 그렇지마는 아내에게로 의심은 갔다.
허숭은 마침내 서울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정선이가 갑진과 함께 야구 구경을 가던 날 식전 차로 허숭은 심히 괴로운 가슴을 안고 서울을 향하였다.
허숭은 미리 아무 기별도 아니하고 불의에 집에 뛰어들어 정선이가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려고 하였다.
"아니다. 그것은 옳지 않다. 사랑하는 아내를 의심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미리 기별을 하는 것이 옳다."
이렇게 생각하고 숭은 신안주에서도, 평양에서도 전보를 치려고,
<금야착경. 숭>
이라는 전보문까지 지어가지고 플랫폼에 여러번 내렸지마는 그 때마다 치가 떨리도록 분한 것이 치밀어 올라오므로,
"응 그대로 가자."
하고는 중지하였다.
허숭은 자기의 감정을 눌러 평정하게 만들려고 여러 가지로 애를 썼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벌벌 떨리는 전신의 근육은 진정할 줄을 몰랐다.
그러나 마침내 숭의 이성은 감정을 이겼다. 숭은 황주에 이르러,
<밤에 가오. 남편>
이라고 전보문을 특별히 정답게 지어서 치고, 황주 사과를 세 바구니나 샀다.
이런 일을 마치고 차실에 돌아오니 맘에 일종의 유쾌함을 깨달았다. 그가 사랑하는 대동강의 경치도 본 듯 만 듯 지나버린 허숭은 나무릿벌, 정반산성의 경치를 바라볼 맘의 여유를 얻었다. 아무리 볕이 청명해도 음침한 빛을 띠는 회색의 산들은 숭의 맘과도 같았다.
경성역에 내린 것이 밤 열시 좀 못 미처였다. 열차가 스스르 플랫폼에 들어가 닿을 때에 숭은 과히 남의 눈에 띄지 아니하리만치 창 밖으로 낯을 향하여 사람들 틈에 정선을 찾으려 하였다. 그러나 마침내는 찾지 못하였다.
"아마 정선은 나를 일 이등차에서 찾을는지 모른다. 나는 이제부터는 우리 농부들과 더불어 삼등차 객인데."
하였다. 그리고 짐을 들고 숭은 차에서 내려서 연해 사랑하는 아내의 모양을 찾으면서 사람 새를 헤치며 일 이등 앞으로 갔으나 거기도 정선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