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순은 정선의 행동이 좀 불쾌하였다. 우물가에서 쓰러져 울 때에 솟았던 동정이 다 사라지고 말았다. 우선 남편은 서울 간 지가 이틀이 넘도록 정신도 없이 있다가 터덜거리고 내려온 것이 싱겁게 보였다. 그런데 그 편지는 대관절 무슨 편지길래 그리 애걸을 하는가. 아마 정선이가 서울서 무슨 죄를 지었는데 그 편지는 그 죄를 허 선생에게 일러바치는 것인가. 허기는 그 편지를 받자마자 허숭이 그것을 박박 찢어버리는 양이 수상도 하였다-유순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편지 조각을 찾아내어서 정선에게 보이고 어떤 모양을 하는가 보고 싶었다.

 

유순은 다시 부엌으로 내려가서 나뭇단을 들어내고 부엌 구석을 뒤진다.

 

"넌 아까부터 무얼 그리 찾니"?

 

하고 아궁이 앞에서 감자를 깎던 한갑 어머니가 순을 돌아본다.

 

"편지 찢은 조각요."

 

하고 순은,

 

"참 할머니, 편지 찢은 조각 못 보셨어요"?

 

하고 입에 손을 대고 웃는다.

 

"편지면 편지지. 편지 찢은 조각은 다 무엇이냐"?

 

하고 한갑 어머니는 호기심을 일으킨다.

 

"그런 큰일낼 편지가 있답니다. 어째 한 조각도 안 남았어. 죄다 아궁이에 들어갔나 온. 이런 데 한 조각 남아 있으면 작히나 좋아. 옳다, 여기 하나 있다!"

 

하고 순이가 종이 조각 하나를 얻어들고 후후 먼지를 분다.

 

"찾었니"?

 

하고 한갑 어머니가 염려가 놓이는 듯이,

 

"어디 나 좀 보자."

 

하고 고개를 내민다.

 

"자요."

 

하고 순은 불규칙으로, 사각형으로 찢어진 종이조각 하나를 한갑 어머니 눈앞에 갖다 댄다.

 

"거기 무에라고 썼는데 그렇게 야단이냐. 어디 좀 읽어보아라, 넌 글 알지, 내가 아니, 눈이 발바닥이지. 아무리 야학을 해도 모르겠더라. 바뱌버벼까지밖에는 더 안 들어가는 것을 어떡하니? 우리 아인 알지-그럼, 한갑인 진서도 알지. 아이구 이번 고등법원에서나 우리 아들이 무사히 될라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우연히 일어난 아들 생각에 종이조각 문제는 잊어버리고 감자 껍데기만 득득 긁는다.

 

순은,

 

"여기 한 조각 있습니다."

 

하고 부엌에서 얻은 종이조각을 정선에게 갖다 주었다.

 

"어디, 어디."

 

하고 그 종이조각을 받았다.

그 조각에는 어느 글자의 변인 듯한 <言>자, <眞>자, <令>자, <閨>자의 한 편 귀퉁이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글자가 누구의 것임을 정선은 곧 알았다.

 

"순아, 여기도 한 조각 있다."

 

하고 부엌에서 한갑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한갑 어머니는 이 종이조각이 허 선생의 부인에게 무슨 필요가 있는지 모르나, 은인의 부인이 애써서 찾는 것이니까 자기도 찾은 것이었다.

순은 속으로 우스운 것을 참고 밖으로 나갔다. 허 선생은 일찍 이렇게 필요없는 심부름을 시킨 일이 없었다. 대관절 이 종이조각이, 그것을 찾는 것이 세상을 위해서 무슨 필요가 있느냐 말이다.

 

"자, 이것도 쓸 거냐."

 

하고 한갑 어머니는 부엌문을 열고 마주 나오며 순에게 손톱만한 종이조각 둘을 주며,

 

"내야 아나. 눈이 곰의 발바닥인걸."

 

하고 소매로 눈을 비빈다. 아무리 비비더라도 밝아질 수는 없을 것이 분명한 눈을.

 

<風聞(풍문)>, <戀愛(연애)>, <令弟(영제, 남의 동생을 높여 부르는 말)>.

 

이러한 글자가 한갑 어머니 찾은 조각에 보이는 것을 보고 순도 사건의 대강을 짐작하였다. 풍문에 들은즉 부인이 어떤 사람과 연애를 한다고 하여서, 그 편지를 보고 허 선생이 화가 나서 편지를 찢고, 서울로 뛰어올라가신 것이다-이렇게 순은 상상하였다. 그리하면 정선이의 허둥지둥하는 양이 비로소 설명이 되었다. 그렇다하면 우물가에서 울던 것도 헛울음이 아닌가? 그렇구 말구. 무슨 일이 있길래 올라간 지 석 달이나 되도록 소식이 없지.

 

"그렇기로 그렇게 얌전한 정선이가"?

 

하고 순은 혼자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