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선은 이 편지를 듣는 동안 분함, 부끄러움, 울렁거림이 모두 뒤섞여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언니는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우"?

 

하는 것이 가까스로 정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좋은 사람, 그야 김갑진이가 좋은 사람은 아니겠지. 색마겠지. 그렇지마는 같은 색마라고 하더라도 이건영이보다는 여러 등 높단 말이다. 첫째는 힘이 있거든, 여자에게 애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을 한단 말이다. 도무지 젊은 여자 앞에 오면 발바닥이라도 핥을 듯이 귀축축한 남자와는 다르단 말이다.

 

또 하나는 이 작자의 정직한 것이 좋단 말이다. 얼마나 프랭크하냐 말야. 속에는 이것을 생각하면서 입으로 저것을 말하는 작자들보다는 통쾌하거든. 얘, 난 참 조선 남자들한테는 낙망하였다. 어디 사내답게 씩씩하고 정직한 사내가 있더냐. 모두 돈에 세력에 계집에 코를 줄줄 끌고 다니는 꼴을 보니 기가 막히단 말이다.

 

이 갑진이란 작자는, 젊은 녀석이 대학까지 마친 녀석이, 좋은 일 하나 할 생각 아니하고 밤낮 여자들만 따라다니니 죽일놈인 것이야 말할 것 없지마는, 저 지사의 탈을 쓰고, 도덕가, 예수교인의 탈을 쓰고 그 짓을 하는 작자들보다는 되려 통쾌하고 가와이이(귀엽다) 하단 말이다.

 

또 김갑진의 말도 옳지 아니하냐. 계집애들이 싯까리(단단)하기만 하면야 사내들이 어떻게 덤비나? 못하지. 요새 계집애들이 헤프니깐 사내들이 넘보고 그러는 게다. 어디 정선이 네나 순례 같은 애야 무슨 말 들었니? 순례는 건영이 때문에 그렇게 되었지마는, 그야 순례 잘못이냐. 또 정선이 너도 김갑진이와 이러쿵저러쿵 말이 있지마는, 그야 남들이 정선이를 몰라서 하는 소리지.

 

아무러기로 우리 정선이가 김갑진한테 넘어가겠니? 그러니까 걱정이란 말이다. 숭배를 하거나 죽인다고 했으니, 네나 내나 숭배를 받거나 죽을 판이로구나. 또 한 계집애란 누구야. 거 원, 순례나 아닌가. 이 김갑진인가 한 작자가 헤픈 계집애들은 다 주워 먹고 인제는 좀 단단한 축을 노리는가 봐. 하하하하. 또 한 여자라는 게 순례만 같으면야 어림이나 있니? 그러해서 조선 여자란 어떤 것인가를 따끔하게 그런 녀석에게는 알려주어야 한다. 하하하하."

 

하고 현 의사는 유쾌하게 웃는다. 정선도 어찌할 수 없이 따라 웃었다. 그러나 등골에서는 찬 땀이 흘렀다.

 

"언니, 난 가우."

 

하고 정선은 일어났다.

 

"왜, 저녁 먹고 놀다 가."

 

하고 현은 정선을 붙든다.

 

"가보아야지."

 

하고 정선은 옷의 구김살을 편다.

 

"애기 뗄 생각은 말어."

 

하고 현은 훈계하는 듯이,

 

"그런 비겁하고 무책임한 짓이 어디 있니? 또 남편에 대한 정보다 자식에 대한 정이 더 깊다더라. 어서 낳아 길러. 아버지 어머니가 착하고 재주있는 사람들이니 애긴들 오죽하랴고. 내 아주머니 노릇 잘 해주께."

 

하고 정선의 등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