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은 갑진의 겨드랑 냄새를 연상하였다. 그러나 정선의 기억에 그 냄새는 도리어 흥분을 시키는 듯한 쾌미가 있었다. 허숭도 생각하였다. 허숭은 파, 마늘을 절대로 아니 먹어서 그런지, 입에서도 몸에서도 냄새가 나지 아니하였다.
"언니두. 언니는 아마 사내 싫어하는 병이 있나 보구려. 어쩌면 언니는 도무지 혼인할 생각을 아니하시우? 도무지 남자 교제를 한단 말조차 없으니. 그리고 적막하지 않우"?
하고 정선은 동정하는 듯이 물었다. 정선은 현의 과거를 생각한 것이었다. 현은 그렇게 얌전하게 생기고, 또 모양을 내기로 유명하고 또 재산 있는 처녀로 유명하면서도 남녀 문제에 관하여 한번도 남의 입에 오른 일이 없는 것을 생각한 것이었다.
"그야 적막한 때도 있지. 나도 여자 아니냐. 허지만 쓸데없이 이 사내 저 사내 교제나 하면 남의 이야깃거리가 되지 무엇하니. 또 혼인 하자니 맘에 맞는 남편도 없고. 글쎄 있다면 한 사람쯤 있을까."
하고 의미있게 웃는다.
"그게 누구요? 언니, 그게 누구요"?
하고 정선은 현에게 졸랐다.
"그게"?
하고 현은 장히 말하기 어려운 듯이 한참이나 정선의 애를 먹이다가,
"정말 일러주랴."
하고 현은 한 손으로 테이블 전을 탁탁 치면서,
"그래도 놀라선 안돼, 성내선 더구나 안되고…."
"그래. 아이, 그만 애 먹이고."
하고 정선은 지금까지의 불쾌한 무거운 짐에서 벗어난 듯한 가벼움을 느끼면서 짜증내는 양을 보였다.
"가만 있어. 그렇게 쉽사리 비밀을 알으켜줄 줄 알구? 안되지, 흥."
하고 현은 벌떡 일어나서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함 하나를 들고 나온다. 그 함을 정선의 앞에 놓으며,
"자, 이걸 좀 보아. 그리구 그중에서 누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가, 또 누가 제일 맘에 드는가, 알으켜내어."
하고 뚜껑을 열어젖힌다.
정선은 호기심 있는 눈으로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거기는 수 없어 보이는 편지들이 들어 있었다. 양 봉투, 조선 봉투, 철필로 쓴 것, 먹으로 쓴 것, 잘 쓴 것, 못 쓴 것, 흘려 쓴 것, 해자로 쓴 것 등 가지각색이었다.
그 글씨가 가지각색으로 다른 것으로 보아, 이것들이 다 여러 사람에게서 온 것을 알 것이다.
"어머니나!"
하고 정선은 무서운 것이나 보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다 웬 편지요? 다 언니한테 온 러브 레타요"?
"그렇다네. 그것만 흥, 같은 사람한테서 온 여러 장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만 하나씩 골라서 표본으로 모아둔 것이란 말야. 처음에는 오는 대로 뒤지도 하고 불쏘시개도 했지마는, 차차 생각해보니깐 표본만은 모아두는 것이 후일에 참고될 것도 있을 듯하단 말이지. 또 재미도 있고. 그래서 작년부터 이렇게 모으기를 시작한 것이란 말야. 내가 이렇게 받았으니깐 정선이도 퍽 많이 받았을 테지. 나보다 어여쁘고, 젊고, 부자요, 귀한 집 따님이니깐 오죽하랴고."
"아니야, 언니. 나도 더러 받기는 했지마는 모두 합해야 스무 남은 장 될까. 난 그리 많지 않아요. 언니, 언니가 미인이지 내가 뭐 미인이요"?
"암 그렇지. 정선이야 미인인가… 그런데 정선아, 너 교제 좀 삼가라. 이 박사랑, 김 남작의 아들이랑 너무 자주 너의 집에 다닌다고 말들 하더라. 무슨 일이 있을 리야 없겠지마는 그래도 네 남편한테 그런 말이 굴러들어가면 재미가 없거든. 또 젊은 여자가, 그도 처녀도 아니요, 남의 아내가, 왜 남의 시비 들을 남자 교제를 하느냐 말이다.
남자들이 너를 따라올 때에야 네 지식을 따라오겠니? 인격을 따라오겠니? 세력을 따라오겠니? 입으로는 무슨 꿀 바른 소리를 할는지 모르지마는, 결국은 네 자색을 따라오는 것이어든. 나도 그렇지, 이 작자들이 내게 반해서 이런 편지를 하고, 선물을 하고, 별 짓을 다 하지마는 그 속은 내 몸을 한번 가지고 놀아보자는 것이지. 그중에는 내가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홀몸이니깐 이 집간이나 있는 것을 탐내는 놈도 있을 것이고, 그것을 몰라, 빤히 다 알고 있지. 그리고 속아? 미쳤나 왜."
하고 픽 비웃는다.
"그럼."
하고 정선은 현의 말에 부득이한 찬성의 뜻을 아니 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