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의사, 나 당신 속 모르겠소. 당신같이 젊고 아름다운 사람이 왜 남자를 모르시오. 인생의 낙 가운데 남녀의 낙같이 좋은 것이 또 있소? 나하고 사랑합시다. 내 인생의 새로운 방면을 가르쳐주리다."
까지 읽고 현은,
"어때, 이 작자의 수작이"?
하고 읽기를 계속하여,
"나는 지금 조선에서는 제일 잘난 사내요, 젖비린내나고 문화 정도가 낮은 조선 계집애는 도무지 아이데(일본말로 짝)가 아니 되오. 오직 현 의사만이 내 짝이 될 것 같소"
하고 현은 또,
"자, 이 작자 하는 소리 보아요."
하고 깔깔 웃는다.
그러나 정선은 웃을지, 울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만 잇새만 빨았다.
"또 봐요. 끝이 더 장관이니."
하고 현은 또 읽는다.
"나는 여태껏 어떤 여자든지 맘에 두고는 내 것을 못 만들어본 일이 없소. 오직 세 사람이 있을 뿐이오. 그것은 현 의사와, 현 의사가 사랑하신다는 윤정선과, 또 하나, 이것은 이름을 말하더라도 현 의사는 모르시리다. 맘에 두고 아직 손에 넣지 못한 것이 이 세 사람뿐이오. 그런데 윤정선은 내 친구의 아내요. 그렇지마는 이애는 아직 시집가기 전부터 내가 눈독을 들였는데, 고만 허숭이놈한테 빼앗겨버리고 말았소. 그러나 사내가 한번 맘을 먹었다가 흐지부지하고 어떻게 산단 말요. 내 일주일 안에 그 계집애를 내 손에 넣기로 작정을 하였으니, 그 일이 끝나면, 또 한 계집애에게 분풀이를 하고 나서 그 뒤에는 과거의 복잡한 생활을 청산하고, 당신을 참으로 사랑해볼까 하오"
여기까지 읽고 현은,
"이제는 날더러 당신이라고."
하고 또 읽는다.
"내 들으니, 당신은 도무지 사내를 접촉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후려도 넘어가지 아니한다 하니, 조선에도 이런 여자가 있는가 탄복함을 마지아니합니다"
여기 와서 현은,
"후후, 이제는 탄복하오가 아니라 합니다래."
하고 자못 만족한 모양이었다.
현은 또 갑진의 편지를 읽는다.
"내가 건드려서 휘지 아니하는 여자가 있다 하면 나는 그 여자를 숭배하거나 죽이거나 둘 중에 하나를 하려 하오. 그러나 불행히 나는 아직 그러한 여자를 만나지 못하였소. 원컨대 현 의사여! 당신이 나로 하여금 당신을 숭배케 하거나 죽이게 하소서"
현은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자, 어떠냐"?
하고 편지를 봉투에 넣어 테이블 위에 내어던지며,
"아마 이런 연애편지는 세계에 드물 것이다. 굉장하지"?
하고 혼자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