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은 놀랐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의 말이라는 <그>란 누구요, <말>이란 무슨 말일가. 아내를 의심케 하는 말이라고 하니 또 그 말에 매우 흥분된 것을 보니 정선의 정조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그러면 자기와 갑진과의 관계에 대한 누구의 밀고인가. 그것이 대체 누구일까?

 

"오, 이건영이!"

 

하고 정선은 혼자 대답하였다. 갑진에게 대한 질투로 이런 일을 하염직도 한 일이다 하였다.

 

"그렇기만 하면야 변명할 길도 없지 않지-전혀 무근지설이라고 그러지."

 

이렇게 속으로 작정하고, 정선의 혼은 둘로 갈려서 한 혼은 안심하고, 한 혼은 부끄러웠다.

 

"인제야 속일 수밖에 있나."

 

하고 정선은 남편을 대하게 될 때에 할 변명거리를 생각한다.

 

"그럼 무어 속이는 건가. 말을 아니하는 게지. 그대로 실토를 했다가는 큰일 나게. 아이 부끄러워, 아이 부끄러워! 입 꼭 다물고 있으면 고만일걸, 왜 실토를 해? 시골 사람은 무섭다던데. 남편이 어찌할 줄 알고. 그 말을 왜 해? 가만 있지. 남편을 속이는 것이 미안이야 하지마는 누가 어땠나? 무어 단 한번, 그도 잠깐, 그것도 유혹을 받아서 그런 걸. 그래 말 안하기로 해!"

 

하고 정선은 마치 경매에 낙가하듯이 말 아니하기로 손바닥을 딱 쳤다.

 

"실토만 말아. 그리고 후엘랑은 다시는 그런 일은 없을걸."

 

그렇지마는 풀리지 아니하는 것은 뱃속에 들었는지 모를, 자꾸만 들어 있는 것만 같은 아이 문제다. "단 한번, 그도 잠깐"이라고 정선은 갑진이와 사이에 지어진 자기의 허물이 바늘끝으로 한번 찌른 자국에 지나지 않게 적게 보려고 하지마는, 그 단 한번 이라는 것이 생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영원히 소멸할 수 없는 자취를 남겼을 뿐더러, 만일 잉태한 것이 사실이라 하면 새로 생긴 생명을 통하여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하는 인륜 관계까지 발생하게 할 것이다.

 

"자궁을 긁어내어 달랠걸"

 

하고 정선은 후회한다.

 

밤차로라도 곧 서울로 올라가려고도 했지마는, 그랬다가 또 차에서 길이 서로 어긋나도 안되겠고, 여기서 남편이 내려오기를 기다리자니 그랬다가 늦도록 아니 내려와도 걱정이었다. 문제는 하루라도 바삐 남편을 만나도록 하는 것이다. 보고 싶어서보다도 죄의 흔적을 소멸하기 위하여서 시각이 바쁘게 남편을 만나지 아니하면 아니되었다.

 

"상 드려요"?

 

하고 유순이 문을 방싯 열었다. 그동안에 아침을 지은 것이다.

 

밥은 방아에 찧은 쌀, 방아에 찧은 쌀은 생명을 가진 쌀이다. 도회의 돌가루 섞은 배아와 단 껍질 다 벗겨진 쌀과는 다르다.

 

그리고 토장국, 무나물, 김치, 두부, 고기.

 

정선은 밥을 먹어가며 순이에게 이 말 저 말을 물었다. 무심코 묻는 듯하면서도 묻는 정선에게는 여자에게 특유한 은미한 계획이 있었다.

 

"내가 안 온다고 걱정하시든"?

 

하고 정선은 유순을 통하여 남편의 속을 떠보려고 하였다.

 

"그럼요."

 

하고 대답은 해놓고는 유순은 어떤 대답을 해야 옳을까고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되, 정선의 눈치를 보아서 하려는 듯이 심히 날카로운 눈으로, 그러나 그 날카로움을 웃음으로 싸서 정선을 살펴보다가,

 

"날마다 기다리셨답니다. 차시간만 되면 저 등성이에, 저기 저 등성이 말씀야요(하고 창을 열고 가리키며), 저 등성이에 올라가시어서 정거장 쪽을 바라보시고는 오늘도 안 오는군, 그러신답니다."

 

"편지도 기다리든"?

 

하고 정선은 물을 필요도 없는 말을 묻는다.

 

"그럼요. 우체 사령이 왔다가면 퍽으나 섭섭해하시는걸요."

 

하고 유순은 허숭이가 길게 한숨을 내어쉬고 무슨 생각에 잠기던 것을 생각하고 그 모양을 정선에게 더 자세히 그리려 하였으나, 자기가 허숭에게 너무 깊이 관심하는 것을 정선이가 되려 이상히 알까 보아 그만하고 입을 다물었다.

 

"서울 가시기 전에 무슨 말씀 없든"?

 

하고 정선은 무심코 돌아오는 듯이 목적한 정통에 맞는 살을 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