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은 비로소 정선이가 울고 있는 것을 알고 참으로 성낸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의외로다 하는 듯이 잠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정선의 심상지 아니한 양을 바라보고 섰더니,
"하하하하."
하고 갑진은 무슨 크게 우스운 일이나 보는 듯이 껄껄 웃고는,
"오, 알았소. 예수교당에서 그 쑥들이 무에라 하는 양심이란 것이 발작했구려. 응, 옳지. 하느님의 딸이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판이로구려. 어, 우리 정선씨 천당가겠는걸, 허지마는 천당에는 고이(연애)라는 것이 없다던걸. 모두 쑥들만 모여서 주여, 주여 하고 정선이 모양으로 물보다도 싱거운 눈물이나 짜고…."
하고 웃음 절반 말 절반으로 지절대는 것을 정선은,
"무엇이 어쩌고 어째요? 그런 말법 어디서 배웠소? 이 악마 같으니!"
하고 몸을 부르르 떤다.
"악마? 거, 좋은 말이오. 나는 원래 악마니까, 허지만 남편 있는 여편네가 서방질하는 것도 천사라고 쑥들은 아니하던 모양인데."
하고 또 한번 갑진은 껄껄 웃는다.
유월이는 갑진이가 전에 없이 마님에게 버릇없이 구는 것을 보고 또 정선이가 분해서 치를 떠는 것을 보고,
"그게 다 무슨 말씀이셔요"?
하고 쇳소리 같은 소리를 빽 지르며 갑진을 흘겨본다. 유월이는 평소에 갑진이가 정선을 엿보고 추근추근하게 다니는 것이 절치부심(切齒腐心)하게 미웠었고, 더구나 유월이가 가장 미워하는 어멈이 갑진의 편이 되는 것이 미웠던 판이라 갑진을 칼로 찔러 죽이고도 싶었다.
"요년! 요 발칙한 년 같으니."
하고 갑진은 주먹을 들어 유월을 위협하고,
"흥, 악마! 하룻밤 서방도 서방이거든 날더러 악마라고."
하고 빈정대기를 계속한다.
"아이구 저런 악마가-저런 사람 잡아먹을 악마가."
하고 정선은 말이 꺽꺽 막히며,
"저 악마가 나를 유혹해서 몸을 버려놓고는…아니 저 악마가…에잇…저 악마가!"
하고 기색하려 한다.
"유혹? 아니 누가 누구를 유혹했단 말야"?
하고 갑진은 정선의 곁으로 한 걸음 대들며,
"제가 살려주오 하고 매달렸지, 누가 강○을 했단 말야, 웬말야"?
하는 것을, 유월이가 갑진의 뒤로 가서 그 외투 자락을 잡아 끌며 우는 소리로,
"나가세요! 아이, 큰일나겠네, 나가세요!"
하고 매어달린다.
"요년은 왜 요모양이야."
하고 갑진은 유월의 머리 꽁지를 끌어 내어두른다. 유월이는 방바닥에 쓰러진다.
"아이구 저 뻔뻔한 악마가."
하고 정선은 입으로 거품을 뿜으며,
"당신이 날더러 야구 구경 가자고 안했소? 구경하고 집으로 오려니까 저녁 먹으러 가자고 안했소? 저녁 먹고는 집으로 오려니까 택시로 바라다 주마고 안했소? 택시를 태워놓고는 한강까지 드라이브나 하자고 안했소? 한강 갔다가 내가 늦었으니 가얀다니까 좀더 가자고 안했소? 요렁조렁 오리 고을까지 끌고 가서는 이왕 왔으니 오류장 구경이나 하고 가자고 안했소?
내가 거기서 얼마나 싫다고 했소? 그러니까 한 시간만 있으면 인천서 오는 막차가 있으니, 자동차는 추우니 자동차는 돌려보내고 기차로 오자고 안했소? 그리고는 막차시간이 되었으니 정거장으로 내가 나가자고 암만 졸라도 듣지 아니하고 나를 꼭 붙들고 막차를 놓쳐버리게 아니했소? 그리고는 내가 앙탈을 하니까, 그러면 자동차를 부른다고 안했소? 자동차 오는 동안에 자동차에서는 추울 테니 위스키를 몇잔 먹자고 안했소? 그리구 내가 안 먹는다는 것을 억지로 먹여놓고는…나를 취하게 해놓고는, 그리고는 이제 와서는 나를 유혹하지 아니했다고, 응 그러면 내가…."
하고 정선은 "아으 아으" 하기만 하고 기색하여 쓰러진다. 갑진은 지금까지 부리던 호기도 어디 갔느냐 하는 듯이,
"유월아, 냉수 떠와, 냉수."
하고 정선을 일으켜 안는다. 그리고 숨이 막히는 정선의 입에 제 입을 대어 거품 나온 것을 핥아먹고, 뺨을 비비고, 만지고, 젖을 만지고, 발을 만지고, 마치 귀여운 어린애나 만지는 듯이 갖은 짓을 다 한다. 그러다가 유월이와 어멈과 기타 하인들이 들어온 때에야 그 짓을 그친다.
이윽고 정선이 다시 정신을 차린 때에 정선은 주먹으로 갑진의 안경 쓴 상판을 갈기고 몸을 뿌리쳐 갑진의 품에서 나왔다. 갑진의 안경이 깨어지며, 그 깨어진 유리조각에 갑진의 양미간에 생채기가 나서 피가 조금 흐른다.
정선은 두 팔에 경련을 일으키며,
"나가아아!"
"나가! 나가!"
하고 책상 위의 책을 집어 갑진을 향하여 던졌다. 갑진은 몸을 비켜서 피하고, 그 책은 쌍창을 뚫고 마루로 나가 자빠졌다.
"오, 가마."
하고 갑진은 모자를 들고 일어나며,
"허지마는, 네 뱃속에 내 자식이 들었는지 몰라. 그 애가 나거든 날 찾아라. 그 전에라도 보고 싶거든 만나주지."
하고 나와버렸다.